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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 산책: 조직문화, 쉽게 풀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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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 산책: 조직문화, 쉽게 풀어 보기
“좋은 조직 문화 어떻게 만들까?”한상엽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이 5일, 206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조직문화 산책: 조직문화, 쉽게 풀어보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한상엽 연구위원은 “좋은 조직 문화가 있으면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할 힘이 된다”며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드는데 정답은 없다.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꾸준히 만들어 가야한다. 좋은 조직 문화는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조직이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강연 내용◆  “조직 문화는 어느 조직에나 존재”‘냄비 속 개구리’라는 얘기가 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뛰어나와서 살지만, 물이 서서히 끓으면 개구리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이다. 1996년에 출판된 로버트 퀸의 <딥 체인지>에서 나온 이 말은 변화를 감지 못한 개구리는 서서히 죽어가지만 변화를 감지하고 과감히 뛰어 나온 개구리는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생물학자들은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바로 죽는다”라며, 사람들이 왜 이런 거짓말을 믿는지에 대한 논문을 내놓기도 했다.이 얘기를 꺼낸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약간의 삐딱함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이다. 리더십에 관한 정의는 학자 수만큼 많다. 조직 문화에 대한 정의도 마찬가지다. 조직 문화에 대한 이론 체계를 정립한 인물로, 조직 문화에 대한 강의에서 꼭 나오는 에드거 샤인이라는 학자는 조직 문화는 3개의 층으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이런 개념을 보면 머리가 어지럽고 조직 문화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어쨌든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좋은 문화든 나쁜 문화든 그리고 의도적으로 관리하든 관리하지 않든 모든 조직에는 조직 문화가 존재한다아까 말한 로버트 퀸과 킴 캐머런이란 학자는 1999년 같이 쓴 책 <Diagnosing and Changing Organizational Culture>에서 조직의 변화에는 구조 변화와 문화 변화라는 두가지가 있다고 했다. 구조 변화는 눈에 잘 보이는 조직 구조나 제도, 시스템 등 하드한 측면의 변화로 새로운 평가 및 보상 제도 도입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문화 변화는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기본 가치, 비전, 행동양식, 신념 등 소프트한 측면의 변화이다.구조 변화는 무엇을 바꾸었는지가 잘 보이기 때문에 많은 경영진들이 이에 집중한다. 하지만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흔히 하는 말로 제도나 시스템은 일종의 도구이다. 도구가 있으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지만 도구가 없이도 일은 할 수 있다.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었어도 문화적 뒷받침이 없으면 변질된 모습이 나타난다. 이것을 게이밍이라고 얘기하는데 유명한 사례가 있다. 미국 경찰들이 범죄 예방을 위해 시내 순찰을 하는데 순찰은 안 하고 차 세워놓고 쉬니까 이것을 막으려고 하루에 이 정도 거리는 순찰해야 한다는 주행 기록에 관한 평가 지표를 만들어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경찰들이 어떻게 했냐 하면 아침에 출근해 외곽 도로로 나가서 30분 정도를 밟고 돌아와서 도넛 가게에서 커피 마시면서 쉬었다.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이런 사례로 또 코브라 효과가 있다. 인도가 영국 식민지일 때 식민지 정부가 보기에 인도에 코브라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식민지 정부는 코브라를 잡아오면 포상을 해줬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면 사람들이 코브라를 잡으러 다니지 않고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안 식민지 정부는 포상금을 끊어 버렸다. 그러자 인도 사람들은 키우던 코브라를 다 풀어줬고 이 때문에 코브라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이런 게이밍 사례는 조직을 바꿔보겠다고 제도를 바꿨지만 사람들이 그 제도의 빈틈을 찾아서 악용하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조직 변화에서 문화 변화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좋은 조직 문화가 있으면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할 힘이 된다”조직 문화가 경영 성과에 도움이 되느냐는 얘기가 많은데 실제로 그런 연구가 많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조직 문화를 갖고 있으면 회사 성과가 좋아지고, 회사 성과가 좋으면 그 성과를 구성원에게 베풀어 조직 문화가 좋아지는 식의 선순환 관계가 형성된다고 얘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조직 문화가 좋으면 회사 성과가 좋아진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사 성과는 매우 다양한 요인들의 종합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좋은 조직 문화가 있으면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할 힘은 된다. 당장은 쥐어짜기로 성과를 내더라도 조직 문화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정말 위기가 닥쳐왔을 때 구성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좀 부드러운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노래를 못하면 음치라고 한다. 음치의 사전적 정의는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음치인 이유는 소리를 못 내서가 아니라 자기 소리를 듣지 못해서이다. 또 음치의 특징은 반주 소리를 못 듣고 자기 소리만 낸다. 반주 없이 노래하면 음치가 아닌 것 같지만 반주만 있으면 맞추지 못한다. 그래서 음치에서 벗어나려면 소리 내기보다는 소리 듣기가 먼저이다. 자기 소리를 정확히 듣는 것아 음치 탈출의 출발점이다.이 얘기를 한 까닭은 조직 문화를 바꿔가는데 있어 첫 번째가 우리 회사가 어떤 상황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아기가 울면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기저귀가 젖었거나 배탈이 났거나 배가 고파서 등등. 이 원인들을 잘 분석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그런데 이 원인 진단을 잘못하면 이상한 해법을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원인 진단을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원인에 따라서 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해결책이 효과가 없다면 원인을 잘못 짚었거나 문제 정의가 잘못된 것이다.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먼저 문제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또 문제를 문제가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아기가 우는데도 ‘애들은 원래 우는 거야’라고 하면서 그냥 무시하는 식이다. 문제를 푸는 두 번째 방법은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원인의 영향력을 약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학문에서는 응급처치라고 하는데 애한테 사탕을 주거나 먹을 것을 주면 일단 울음을 멈춘다. 조직에서 뭔가 하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이 정도 수준인 것 같다.문제 해결의 마지막 방법은 원인의 영향력을 완화하는 동시에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이다. 아기가 울 때 엄마를 데려오면 된다. 엄마를 데려오면 애는 일단 우는 걸 멈춘다. 그 엄마가 본인의 경험과 애정을 가지고 얘를 살펴보면서 왜 애가 우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조치를 취한다. 기업에서 이 엄마같은 존재가 경영진이다. 조직에 대한 애정과 지금까지 조직에서의 생활했던 경험을 가지고 문제 원인을 찾아내고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은 경영진이다.◆ 조직 문화의 진단 도구 ‘서베이와 인터뷰’조직 문화를 진단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서베이와 인터뷰가 있다.서베이는 설문지를 뿌려 회사의 조직 문화에 대한 의견을 파악하는 기업으로, 빠른 시간 안에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가 있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면비교적 솔직한 응답을 들을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밑바닥 정서 같은 구체적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인터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일부의 의견만 듣는 단점이 있지만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서베이는 설문지를 만들고 이어 설문을 실시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그 절차가 길고 복잡해 보인다. 그런데 요즘은 AI 시대다. 설문지 구성이 아주 편해졌다. 자체적으로 설문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다양한 설문지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생성형 AI에게 “우리 회사에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진단해 줄 설문을 만들어줘”하면 설문을 만들어준다. 설문 실시 과정에서도 설문조사 플랫폼 업체를 활용하면 설문 실시 및 분석의 대부분을 손쉽게 진행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설문 결과에서 시사점을 뽑는 것이다. 이것도 AI한테 물어보면 해준다.서베이는 가급적 조직의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나, 서베이라는 근본 속성상 설문 응답 결과가 조직의 실제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 경영 성과가 좋아서 보너스가 나오면 기분이 좋아서 서베이 점수가 올라간다. 또 기대 수준에 따라 동일한 현상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점수를 부여할 수 있다. 기대 수준이 높을수록 낮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가능하면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자신의 상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익명성이 보장되지않을 경우에는 문제가 생길 걸 두려워해서 일부로 긍정적으로 평가를 한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실제 상황에 대한 정보 부족이나 잘못된 정보도 설문조사에서 이상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다.설문은 매우 편안한 도구이지만 정확한 도구는 아니다. 반드시 추가 인터뷰와 사실 확인 등 검증을 해야한다. 그렇지만 인식은 중요하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라는 유명한 책을 펴낸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경영진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그거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된 거 아닌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질문을 받자 “그 인식이 전부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전부다”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화면에 보이는 3개의 사진은 로고가 가슴에 새겨져 있는 옷이다. 이 옷 3개를 보는 사람들이 인식은 다르다. 맨 왼쪽에 있는 옷은 회사 옷이니 회사에서만 입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가운데 있는 옷은 특정 조직을 좋아하는 팬이라는 소속감을 불러일으켜 주면서 약간의 패션처럼 인식이 된다. 맨 오른쪽의 내셔널지오그래픽이라는 특정 브랜드를 보면서는 특정 조직이 아니라 패션이라고 생각을 한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걸 봤는데 미국 사람들한테 맨 오른쪽 옷을 보여주니 맨 왼쪽처럼 인식한다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옷을 만들지 않고 한국에서만 만들어 파는 옷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써있는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내셔널지오그래픽 직원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얘기다.서베이를 처음 접해본 경영진들의 반응은 암 환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거의 비슷하다. 첫 번째는 “이 결과를 못 믿겠다. 제대로 조사한 것 맞나?”라며 부인한다. 두 번째는 “직원들의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며 화를 낸다. 그 다음에는 현실과 어느 정도 협상을 한다. “그래 일부분은 인정하겠다.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니 곧 나아질 거다”라는 반응이다. 마지막에 “사람들이 이렇게 인식한다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달라”고 수용한다.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냐면 경영진들이 조직 밑바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서베이 결과를 놓고 토의할 때 △가설적 설명을 제공할 것 △경청과 받아쓰기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이지 말 것 △성급하지 말 것 등을 추천한다. 특히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지 말아야 한다. 또 ‘바로 고치겠다’식의 약속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우리 같이 바꿔보자’는 정도에서 얘기하는 게 좋다.◆ “인터뷰만으로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다”조직 문화 진단의 또다른 수단은 인터뷰이다. ‘인터뷰 ABC’라는 게 있다. 현재의 조직 문화 상태인 ‘현상(Behavior)’, 이 현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Consequence)’, 그리고 현재 조직 문화를 만들어낸 ‘원인(Antecedent)’을 파악하는 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현상을 하나 찾으면 그 원인을 찾고 그 찾은 원인을 다시 현상 자리에 갖다 놓고 다시 원인을 찾는 식으로 계속 파고 들어간다.그럼 인터뷰만으로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는지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겠다.‘USS 벤폴드’라는 배는 미국 해군 내에서 최악의 배로 유명해서 병사들이 가장 타기 싫어했던 배였다. 1997년에 이 배의 함장으로 부임한 마이클 에보라소프는 2년의 임기 동안 가만히 있어도 진급할 수 있었지만 그러면 안되겠다 싶어 하루에 5명씩 310명의 전체 승무원과 일대일 인터뷰를 직접 했다. 그가 던진 핵심 질문은 3개로 “벤폴드 함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였다.인터뷰를 통해 A와 B 목록을 작성했다. A 목록은 누가 봐도 중요한 미션과 관련된 내용이었으며, B 목록은 반복적인 지루한 작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이클 에보라소프 함장은 주로 B 목록의 해결에 집중해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 예를 들면 배에는 나사나 볼트가 많았는데 녹이 자주 슬어 1년에 6번~7번씩 녹을 다 벗겨내고 페인트칠 작업을 해야했다. 이 일이 너무 힘들다고 얘기하니까 녹이 좀 덜 스는 스테인레스로 다 바꿨다. 그러자 1년에 한번만 그 작업을 하면 됐다. 다른 배에서도 이걸 받아들여 지금 미국 군함에 쓰이는 나사나 볼트는 대부분 스테인레스로 바뀌었다. 이 사례를 두고 병사들이 좋은 사람들이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객관적 지표로는 병사들의 대부분이 사회 하층 출신이었다.진단을 해보면 문제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떤 문제를 먼저 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때 선택 기준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첫 번째, 문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이다. 결과가 별로 심각하지 않다면 후순위로 미뤄도 된다. 두 번째는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가이다.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 것이라면 우연이지만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조직의 제도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조직 문화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꿔야 한다. 세 번째,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데 한 번 발생하면 심각한 타격을 주는가이다. 이런 것은 꼭 고쳐야 한다.또 진단을 통해 모아진 불만에 대해서는 회사가 잡아야할 사람의 불만인가 아니면 이직해준다면 고마울 사람의 불만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이직해준다면 고마울 사람의 불만을 자꾸 들어주면 잡아야 할 사람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제도적인 결함의 문제인가 아니면 원칙대로 운영하지 않아서 문제인가 아니면 일부 소수가 제도를 악용하는 것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최근 조직 문화 이슈…‘열심히 일하지 않는 MZ세대?’최근 조직 문화 이슈를 얘기하면 MZ세대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022년 하반기부터 ‘조용한 사직’이 1년 정도 유행했다. 사람들은 MZ세대가 개인주의적이고, 워라밸을 이야기하며 최소한의 일만 하며, 승진도 안하려 하며,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고, 참을성이 없으며, 마음에 안들면 바로 이직한다며 불만들을 얘기하는데 MZ세대의 업무 몰입 수준이 지금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니다.과거의 고성장 시대에는 기업의 성공이 곧 개인의 성공과 일치했다. 회사가 성장하면 그 안에서 승진하거나 보상이 올라가니 당연히 회사에 충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다. 회사의 매출은 증가해도 승진해서 갈 만한 자리는 늘지 않는다. 그러니까 회사 내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그리고 회사 밖에는 리스크는 크지만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도 코인이나 주식 투자로 월급 이상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그래서 지금은 근로 소득이 자본 소득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세상이 됐다.또 계약적 몰입 관계라고 해서 회사에서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확산됐다. 그렇다고 자기 업무를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딱 거기까지’만 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HR은 좋은 사람 뽑아서 잘 육성해 잘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면 안된다. 이 사람이 있는 동안 일 잘하고 개인도 성장하고 회사도 성과 내고 혹시 나가더라도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되고 필요한 시점이 되면 다시 일을 같이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회사에 헌신하는 구성원이라는 암묵적 가정을 버려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주는 것이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든다”먼저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자. 첫 번째, 생물학에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최소량의 법칙은 식물 성장에 있어 아주 소량으로 존재하는 성분이 성장을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이를테면 질소, 인산 등 영양소가 아무리 풍부해도 칼슘 하나가 부족하면 식물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조직 문화도 이와 마찬가지다. 가장 낮은 수준의 요소가 전체 조직 문화의 수준을 결정짓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모든 요소들이 일정 수준 이상 갖춰져야 한다.또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망가뜨리는 것은 매우 쉽다. 조직 문화 만들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고 그 과정이 순탄하지도 않다. 꾸준히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게 조직 문화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합리적이며 이성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지금 좋은 조직 문화 만들기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빠진 질문이 하나 있다. 과연 좋은 조직 문화란 무엇일까?이다. 조직 문화를 얘기할 때 대표적으로 나오는 기업들이 있다.첫 번째가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로 ‘펀 경영’으로 유명하며, 두 번째 미국 온라인 신발 쇼핑몰인 자포스는 ‘홀라크라시’라는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자포스의 CEO가 직원들에게 이 자율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가라는 메일을 쓴 적이 있는데 13%가 나갔다고 한다. 세 번째 넷플릭스는 기업 문화로 ‘규칙이 없는 게 규칙이다’를 표방하고 있는데 국내 대기업 출신으로 넷플릭스에 들어간 사람으로부터 “달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네 번째 아마존은 ‘데이 원’이라는 기업 문화로 유명한데 마치 정글처럼 개인의 이기심을 최대한 자극해서 성과를 내고 올라갈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다섯 번째 화웨이는 미국이 그렇게 때려도 살아남아 있는 기업으로 이 회사의 기업 문화는 ‘늑대 문화’로 불린다. 한국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는데 밤 12시에도 사무실 불이 켜져 있고 그때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웨이의 평균 임금은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평균 임금보다 훨씬 높다. 1억원 넘게 받는 사람들아 절반 이상이다. 여섯 번째 음악 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파이는 애자일 조직 운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뤄냈다.이 가운데 어디가 가장 좋은 조직 문화일까? 정답은 없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어느 기업의 조직 문화가 좋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넷플릭스나 자포스의 모델을 도입해 유지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거의 없다. 단 심리적 계약이라는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존에는 구성원들이 어떻게든 성과를 내면 많은 보상을 해주는 시그널이 명확하다. 비록 정글같은 문화있지만 이런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마존이 좋은 조직 문화이다. 넷플릭스처럼 규칙 없는 데서 일하지는 못하겠고 누가 시키면 그것만 하겠다는 사람에게 넷플릭스는 좋은 조직 문화가 아니다.◆ 조직 문화 명문화한 ‘컬처북’ 제작 두가지 방식조직 문화를 만들고 나면 조직 문화를 명문화한 ‘컬처북’ 또는 ‘컬처덱’을 만든다. 컬처북을 만드는데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톱다운 방식으로, 창업자 혹은 최고 경영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문화상을 정리하는 것이다. 창업자 은퇴 이후에도 창업 정신을 이어가려고 하거나 새로운 경영진이 자신의 경영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혹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반영하는 경우 적합한 방식이다. 경영진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명확성이 높고 비교적 빠르게 정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또하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창업자나 최고경영자의 생각과 구성원들의 생각을 같이 담아 정리하는 것이다. 보통 톱에서 큰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구성원의 참여로 공감대 형성이나 실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 웨이’는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 유명해진 도요타를 많은 곳에서 벤치마킹하니까 이를 한번 정리해 보자고 해서 만들어졌다. 이 중 어떤 방법이 정답일까?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리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하던 방식을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조직 문화 이론의 대가인 에드거 샤인은 “조직 문화를 창조하고 정착시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의 행동이다…특히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경영진이 명확한 조직 문화 방향성을 제시하더라도 중간 관리자들이 이를 따르지 않거나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중간 관리자의 조직 문화에 대한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조직 문화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선배나 동료의 압력(Peer Pressure)이다. 선배나 동료들이 ’우리 회사의 문화는 이렇다‘고 정의해 주지 않지만 이들의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은연중에 조직 문화가 드러난다. 이 피어 프레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상향 평준화 압력‘이 좋은데, 반대로 ’하향 평준화 압력‘이 작용하는 조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동료 평가가 강했다. 동료 평가가 안 좋으면 보상이나 승진에서 불리하니까 이 사람들이 뭘 했냐면 가기 싫은 동료의 생일잔치를 가기도 했다. 그래서 이 동료 압력을 좋은 방향으로 만드는데 있어 경영진들이 신경써야 할 것이 있다. 한 예로 ’크레이그 파크스‘라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5명씩 팀을 만들어 각 개인에 10포인트씩 줘 팀 공동 계좌를 만들고 그 공동 계좌에서 각 개인이 일정 부분 기부할 수 있게 했다. 또 기부가 끝나면 공동 계좌에서 각 개인이 기부했던 것을 최대 얼마만큼 뺄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을 10번 반복한 다음 당신 팀에서 누가 얼마를 기부했고 얼마를 빼갔는가를 알려주고 자기 팀에서 빼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투표하게 했다. 그 결과는 많이 기부하고 적게 인출한 팀원이었다. 왜 그랬을까?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나쁜 사람 되는 거 같아서였다. 이렇게 동료 평가가 작동하면 문제가 있다. 이 실험은 조직 내 이타적인 구성원이 주변 동료로부터 배척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직에는 많이 기여하면서 적게 인출하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서 인정해 주는 것이 좋은 동표 평가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찾았다고 바로 ’그동안 고생했어, 앞으로 인정해 줄게‘라며 접근하는 것도 안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인정하고 가야 한다.대기업들도 조직 문화 관리는 어려워한다. 10년 전의 조직 문화 보고서를 꺼내 보니 지금 조직 문제의 대부분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든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조직 문화는 너무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꾸준히 만들어 가야 한다. 조직 문화의 성공 방정식이라는 것은 없다.<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영림원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아이티비즈 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아이티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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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경영의 원칙 ‘정 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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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경영의 원칙 ‘정 반 합’
“치열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아 업계 최고가 된 기업은 거의 예외 없이 세 가지 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첫째 기본을 지키며 성실하고 우직하게 교과서적인 길을 걷는 기업(正), 둘째 끊임없이 혁신을 꾀하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기업(反), 셋째 그 두 가지를 병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合)이다.”오윤희 조선비즈 국제부장이 8일, 205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경영의 원칙, 정 반 합’을 주제로 강연했다. 오 부장은 이번 강연에서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서 글로벌 기업 CEO와 세계적인 경영 전문가들을 대면 인터뷰하며 접한 성공적인 글로벌 기업들을 헤겔의 정반합 이론에서 이름을 딴 정, 반, 합 기업으로 분류하고 각각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사례와 성공 비결을 소개했다. 또 경영자가 이 정 반 합 기업에서 어떤 마케팅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지, 이들의 성공사례를 기업 경영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경영에서 ‘정반합’이 필요한 이유흔들리는 진자는 좌우를 왔다 갔다 이동하면서 균형을 찾아간다. 정반합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반합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변증법 이론에서 처음 소개한 것이다. 헤겔 자신은 ‘정반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지만 후세 사람들이 그의 변증법 이론을 도식화해 정반합이라고 이름을 붙였다.헤겔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주류로 자리를 잡으면 이것이 ‘정’이며, 이후 시간이 지나 이에 반대가 되는 또다른 이데올로기가 나오게 되면 이것이 ‘반’이며, 정과 반이 서로 갈등과 대립을 하다가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를 지향하게 되는 것을 ‘합’이라고 했다. 헤겔은 이렇게 정반합이 서로 갈등과 대립을 지속하다가 결국 어떤 조화의 상태를 이뤄가는 과정으로 역사는 진행된다고 얘기했다.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을 보면 이런 정반합의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국 역사에서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 왕 찰스 1세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하지만 크롬웰의 통치가 독재로 흐르면서 왕정복고가 일어났고 이후 오랫동안 갈등 끝에 지금의 입헌군주제를 확립하게 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에 등장하는 노론, 소론, 남인, 서인은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으로 갈라져 싸우다가 결국에는 영조가 탕평책을 발표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이뤘다.정반합의 원리가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에도 이런 정반합의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어도어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던 민희진 대표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걸그룹을 기획할 때 정반합의 이론에 따라서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민 대표는 소녀시대를 선보일 때 화장기를 빼고 친근하면서 담백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소녀시대가 주류로 자리잡게 되자 이와 상반되는 이미지의 걸그룹으로 섹시하고 멤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f(x)를 등장시켰다. 소녀시대와 f(x) 둘 다 주류로 자리를 잡게 된 이후에 새로 선보인 걸그룹은 레드벨벳이었다. 레드벨벳은 소녀시대와 f(x)의 ‘합’으로 볼 수 있는데 f(x)보다 친근하면서 소녀시대보다는 완벽한 이미지를 지향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뉴진스가 처음에 나왔을 때 당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걸그룹은 블랙핑크였다. 블랙핑크는 멤버 하나하나가 개성이 강하고 센 캐릭터들이었다. 이 블랙핑크에 대한 반의 개념으로 선보인 것이 바로 뉴진스였다.몇 년 전에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었다.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물건들 예를 들면 필름 카메라라든지 지금은 필기도 잘 하지 않는데 몰스킨 같은 고급 필기 기구들이 디지털에 대한 반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것 역시 정반합의 원리가 적용되는 사례다.나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라는 부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성공한 여러 글로벌 CEO들을 만나보고 느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성공하는 기업들은 어떤 산업이든 불문하고 ‘정, 반, 합’이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정이라는 것은 기본기를 가장 철저하게 교과서적으로 지키는 기업이며, 반은 기존에 없던 참신한 생각으로 블루오션을 새로 만든 기업이다. 그리고 합은 이 정과 반을 절충해서 제3의 길을 간 기업이다. 헤겔의 정반합 이론은 정과 반의 대립을 한 단계 더 승화시킨 합을 가장 최상의 가치로 보았지만 나는 합으로 분류한 기업들이 정이나 반으로 분류한 기업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편의상 정반합이라는 세 가지로 분류했을 따름이다.◆ 정: 기본에 충실하라…정 기업 사례 #1: 진심을 전달하는 기업 ‘젠자임’먼저 정에 해당하는 기업으로 젠자임을 들 수 있다. 젠자임은 희귀병 치료제를 만드는 기업이다. 희귀병은 영어로 ‘orphan disease’로, 말 그대로 고아병이다.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정말 동떨어져 있는 병인 만큼 유사한 질병과의 관련성을 찾기도 매우 어렵다. 제약회사가 약 하나를 개발하는데는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젠자임이 속한 희귀병 치료제 시장은 그 규모가 너무 작다. 그런데 젠자임이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는가에는 사연이 있다. 젠자임은 1981년에 미국 보스턴 차이나타운의 허름한 빌딩에서 시작했다. 그때 젠자임은 단백질 효소를 개발해 실험실에 납품하는 업체였다. 문을 연 지 얼마 안돼 브라이언이라는 아이와 그 부모가 찾아왔다. 브라이언은 9살짜리 아이로 고셰병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고셰병은 동유럽계 유대인들 사이에서 많이 발병하는 희귀병인데 우리나라에는 약 30명, 미국에도 약 2500명 정도밖에 없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몸에서 단백질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해 몸 안에 그대로 쌓여서 온몸이 부풀어 오르고 결국에는 운동 능력을 잃어버리고 목숨을 잃게 된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아이의 부모가 병원이란 병원을 다 돌아다니다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찾게 된 곳이 바로 젠자임이었다. 이 브라이언이라는 소년을 본 순간 젠자임의 창업자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이는 키가 83cm였는데 복부가 너무 부풀어 올라서 허리둘레가 무려 63cm에 이르렀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계속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창업자는 이 아이를 위해 치료제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몇 년의 노력 끝에 1991년 ‘세레데이즈’라는 고셰병 치료제를 개발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고셰병 치료의 획기적인 한 획을 그었다. 이 치료제 개발은 젠자임이라는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계기가 됐다. 젠자임의 창업자는 희귀병 치료제만을 개발하는 한 길을 꾸준히 걷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왜 협소한 시장을 타깃으로 하느냐며 우려도 많았다. 그때마다 당시 창업자는 그 소년을 못 보았으면 몰라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얘기했다.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젠자임은 희귀병 치료제 개발이라는 본래의 사업 목적 외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고, 다행히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다.젠자임은 고객 중심주의 회사로도 유명하다. 젠자임은 언젠가 공장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사고를 겪었는데 고심 끝에 그 공장에서 생산한 모든 약품을 전량 폐기했다.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였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젠자임의 상품은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조금의 오차라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이런 결정을 했다.또 2010년 칠레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는 젠자임의 약품을 쓰는 어린 환자들이 많아 젠자임의 약품이 제대로 배송되지 않으면 환자들의 생명이 위급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진으로 교통망이 전부 무너진 상황에서도 젠자임의 직원들은 직접 차를 몰고 4천 킬로미터를 달려서 직접 환자들에게 약품을 배송했다.흔히 경영 교과서에 많이 나오는 말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라는 것이다. 젠자임의 경우 고객들의 니즈는 아주 확실했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확고한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젠자임은 교과서적인 정도를 밟아 나갔음에도 성공적인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실적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약품 제약 업체를 조사하는 어느 시장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희귀병 시장 약품 시장의 규모는 1560억 달러였으며, 1년 만인 2023년에는 1730억 달러로 대폭 증가했다. 2028년에는 3천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지금 모든 산업이 저성장 기조를 걷고 있는 와중에 젠자임의 사례는 매우 특이하다. 젠자임의 전 CEO 데이비드 미커는 “현재 치료제가 없는 희귀병은 7천여 가지에 달하는데 그 중 치료약이 나와 있는 것은 200~300개밖에 없다. 그만큼 대단한 블루오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정 기업 사례 #2: 한 우물 파기로 성공한 ‘테트라팩’두 번째로 소개할 기업은 테트라팩이다. 테트라팩은 1961년 설립된 스웨덴 기업으로 식음료 용기 제조 부문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다. 아마 가정의 냉장고에는 테트라팩의 용기가 한두 개 정도 들어있을 것이다.테트라팩이 설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핵심 기술인 진공 포장 기술에 있다. 진공 포장 기술은 공기가 용기 안에 들어오지 않게 해서 식음료를 오랫동안 상온에 놔둬도 썩지 않고 유지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개발됐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우유를 유리병에 담아서 수레에 싣고 집집마다 배송했는데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런 식의 배송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유럽에서 우유는 필수 불가결한 식자재이다. 테트라팩의 창업자는 ‘우유가 상하지 않는 용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전통 소시지를 만드는 기법에 착안해 진공 포장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테트라팩이 창업했다.테트라팩은 1961년 설립 이후 꾸준하게 식음료 용기 제조라는 한 길만을 걸어오고 있다. 지금처럼 변동이 심한 시대에 한 우물만 파면 망하기 십상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테트라팩은 한 우물만을 꿋꿋하게 팠고 살아남았다. 그 비결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치열할 정도의 꾸준한 기술 혁신이며, 또 하나는 글로벌화이다.식음료 용기 만드는 데 무슨 기술 혁신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테트라팩은 조금이라도 더 개선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예를 들어 노약자들 같은 경우에는 악력이 약하니까 손에 힘을 덜 들여도 쉽게 마개를 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 용기째로 음료를 마실 때 고개를 뒤로 넘기고 마시는데 어떻게 하면 목 넘김이 좋은지를 인체 공학적인 방법들까지 전부 다 연구해 조금씩 용기에 적용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기술이 축적돼 테트라팩은 식음료 제조 용기 시장에서 1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테트라팩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하나의 비결은 글로벌화이다. 한 우물을 파는 기업일수록 글로벌화가 필수적이다. 성균관대 유필화 교수는 히든챔피언의 성공 전략으로 전 세계 강소 기업들을 소개할 때 세계화가 꼭 필요한 전략이라고 얘기했다. 테트라팩은 이 글로벌 전략을 아주 철저하게 따랐다. 또 각 지역으로 진출할 때 현지 사정에 맞게 각각 다른 식으로 현지화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에는 고령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좀더 쉽게 마개를 열 수 있는 용기들을 개발해 공급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집집마다 냉장고가 갖춰져 있고 냉장 보관에 익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상온에서 테트라팩의 용기를 놔둬도 괜찮다고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는 상온에 놔둬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 과즙이나 요거트 등의 음료 용기를 먼저 내놓았으며 나중에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 테트라팩에 익숙해졌을 때 우유 용기를 공급했다. 그리고 중국에 진출할 때는 우유 마시기 캠페인을 펼치며 시장을 개척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는 우유 소비가 많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우유를 마시지 않다가 성인이 돼서 갑자기 마시면 배탈이 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테트라팩은 우유 마시기 캠페인을 진행하면 우유를 마시고 성장한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 꾸준히 우유를 마실 것이며, 그러면 우유 시장은 커질 것이고 우유 용기도 잘 팔릴 것이라고 먼 미래까지 바라보는 전략을 세워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정 기업 사례 #3: 일본 덕무산업…신발 한짝, 짝짝이도 팔아세 번째 정의 기업으로 소개할 기업은 일본 덕무산업이다. 이 기업은 특이한 것이 짝짝이 신발을 팔고 있다. 사람의 인체라는 것은 사실 정확하게 대칭이 되지 않는다. 오른발과 왼발도 조금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기성품을 사려고 할 때 한쪽 발은 235, 한쪽 발은 240으로 신발을 살 수는 없다. 젊은 시절에는 이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고령화가 진행되고 특히 당뇨나 류머티즘 같은 질병을 앓게 될 경우에는 발 크기의 차이가 커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그럴 경우 똑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게 된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덕무산업은 작은 시장이지만 이러한 시장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짝짝이 신발을 판매하게 됐다. 어떤 식으로 판매를 하는 게 좋을지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다가 텔레마케터 방식으로 고객들이 직접 주문을 하면 상담을 하고, 철저히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해 주문 제작해 배송하는 방식으로 신발을 제조해 팔고 있다.덕무산업 역시 고객층이 협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고객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맨 처음에 고객들의 주문을 받을 때도 니즈를 충분히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오랜 기간 애프터 서비스를 통해 불편한 점이 없는지 개선해야 할 상황은 없는지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고객들의 생일이라든지 해가 바뀔 때마다 연하장 같은 것을 매년 보내면서 고객들을 관리하고 있다, 한두 해 보내고 마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보내 고객들의 자녀가 저희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연하장이나 생일 카드를 보내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정도이다.◆ 반: 남들과 다른 전략을 구사하라…반 기업 사례 #1. 건강에 좋은 콜라 ‘이요시 콜라’반에 해당하는 기업 중 첫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곳은 이요시 콜라이다. 이요시 콜라는 2018년에 창업된 일본 기업이다. 창업자는 고바야시 콜라인데 물론 콜라가 본명은 아니다. 멀쩡한 이름이 있었는데 자신의 인생을 콜라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아예 이름도 콜라로 개명을 했다. 고바야시 콜라는 홋카이도 농대를 졸업하고 도쿄대 농대에서 석사를 딴 후 광고 회사 영업사원으로 평범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직장 일은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재미없는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보람차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취미를 갖게 됐는데 그 취미가 바로 콜라였다. 어린 시절부터 콜라를 좋아했으며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회식 자리에서 술을 잘 못 마셔 콜라를 먹었다. 그러다가 문득 콜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오리지널 콜라 레시피가 온라인에 있었는데 고바야시 창업자는 그걸 본 순간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왜냐하면 본래 콜라는 건강에 좋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오리지널 레시피 제조법에 따라 콜라를 만들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콜라 맛과는 20% 정도 차이가 났다. 고바야시 창업자는 어떻게 하면 콜라 맛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여러 실험을 했다. 정체돼 있던 그의 실험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감의 원천은 창업자의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한의원이었다. 고바야시 창업자는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한의원에 자주 놀러 갔다. 한의원에서 맡았던 계피, 정향, 생강 등 천연 재료들의 향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콜라에 시험삼아 계피나 인삼 같은 한방 재료를 가미했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아는 콜라와 비슷한 맛을 마침내 구현해 낼 수 있게 됐다. 콜라를 직접 만들어 직장 동료들에게 돌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콜라 사업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푸드 트럭을 사서 콜라를 싣고 판매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잘 나가나 싶더니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2020년 코로나19였다. 이요시 콜라는 원래 푸드 트럭에서 인근 오피스 빌딩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장사했는데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장려되면서 직장인들이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오히려 이요시 콜라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일본의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오후 7시 넘어 주류를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업주들은 술을 대체할 수 있는 무알콜 음료를 찾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고 이요시 콜라를 찾는 가게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이요시 콜라는 새로운 판로를 찾게 되고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22년 말 기준 이요시 콜라의 판매량은 100만 병이 넘는다. 한국, 대만 등 아시아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에도 콜라를 해외 배송하고 있다. 이요시 콜라가 크래프트 콜라 바람을 일본에서 일으키면서 비슷비슷한 수제 콜라들이 등장했고 그래서 일본에서는 수제 콜라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고바야시 창업자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크래프트 콜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두 가지로 정의를 해줬다. 첫째 천연 재료로만 만들 것, 둘째 만드는 사람의 장인정신이 들어가 있을 것이었다. 코카콜라와 펩시라는 두 개의 대기업 기성품이 세계 콜라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인정신이 깃든 콜라’라는 말은 이제껏 알고 있었던 콜라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이요시 콜라는 처음부터 독특한 컨셉으로 시작했고 그 이후에도 독특한 콜라 음료를 연달아 만들어 내놓았는데 예를 들어 우유가 들어간 밀크 콜라, 따뜻하게 데워서 먹는 콜라 등이다. 콜라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엎은 이요시 콜라는 크래프트 콜라라는 새로운 시장을 여는데 주춧돌 역할을 했다.◆ 반 기업 사례 #2. 태양의 서커스두 번째 반 기업의 사례는 너무나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이다. 과거의 서커스는 동물이 주를 이뤘다. 곰이 재주를 부리거나 맹수의 입에 사람 머리를 집어넣는 위태위태한 퍼포먼스를 했다. 하지만 이 서커스의 주역이었던 동물은 서커스단이 적자를 면치 못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기도 했다. 동물의 사료값과 훈련 및 유지비 때문이었다.그래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서커스단을 운영하기가 힘들다는 공감대에서 탄생한 것이 태양의 서커스였다. 태양의 서커스를 제일 먼저 만든 사람은 길거리에서 불을 뿜는 공연을 하던 거리 예술가 기 랄리베르테였다. 그는 기존에 서커스의 주역이었던 동물을 쇼에서 없애버리고 대신 뮤지컬, 마임, 댄스, 코미디, 패션 등 다른 영역에서도 재미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뽑아와서 전부 다 버무려 아트서커스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이 아트서커스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이러한 혁신에서 시작된 태양의 서커스는 레퍼토리도 매우 혁신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레퍼토리가 나왔는데 대표적인 것이 라스베이거스의 대표 공연으로 자리잡은 물을 소재로 한 ‘오 쇼’, 불을 소재로 한 ‘카 쇼’이다. 타이타닉, 아바타라는 영화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콜라보를 해서 영화 아바타를 무대로 옮겨놓은 ‘아바타 토룩’ 공연도 호응을 얻었다. 또 마이클 잭슨처럼 유명 음악가의 음악을 소재로 한 공연 등 아주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레퍼토리로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 태양의 서커스가 가진 혁신의 힘이다.하지만 태양의 서커스도 많은 굴곡을 겪었다. 태양의 서커스가 유행하면서 비슷비슷한 아류 기업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가 2015년에 미국의 사모펀드 TPC 캐피털과 중국의 푸싱 그룹에 인수됐으며,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예정돼 있던 모든 공연을 취소하면서 단원의 95%를 내보내고 파산 보호 신청을 했을 정도로 기업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다.나는 2014년, 2022년에 태양의 서커스 다니엘 라마르 CEO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2022년에 그는 “코로나19 당시만 해도 단원들을 다 내보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2022년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공연 업계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단원들에게 연락을 했더니 단원들의 거의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태양의 서커스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던 것이 언젠가는 이 서커스를 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대비해 자발적으로 신체를 단련해왔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쇼를 올릴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태양의 서커스는 2022년에 극적으로 공연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2022년, 2023년는 한국에도 왔다. 그때 들고 온 공연이 태양의 서커스의 성공적인 레퍼토리 중의 하나였던 ‘알레그리아’를 업데이트한 ‘뉴 알레그리아’였다.태양의 서커스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작했고, 피할 수 없는 몇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살아났다. 다니엘 라마르 태양의 서커스 CEO는 “태양의 서커스가 여러 번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혁신적인 DNA와 브랜드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개가 없었으면 아마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블루오션을 만들어낸 대표 기업이면서 아직까지도 계속 혁신하면서 반의 전략을 잘 지키고 있는 기업이다.◆ 반 기업 사례 #3. 한국 웹툰한국의 웹툰 역시 반에 해당하는 사례다. 온라인을 뜻하는 웹과 만화(카툰)에서 이름을 따온 웹툰은 한국에서 탄생한 고유한 문화 장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만화라고 하면 일본이 종주국이었다. 애니메이션 역시 일본이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아성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 바로 한국의 웹툰이었다. 그전까지 만화를 웹으로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웹툰은 세로로 화면을 내리면서 읽는 방식인데 일본 만화의 경우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읽어내려가는 독특한 구조여서 스마트폰에서 보기가 약간 힘들다.한국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데다 IT 강국이며, 빨리빨리 문화는 웹툰 제작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웹툰은 연재 기간이 매우 빨라야만 독자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볼 수 있다. 한국 웹툰은 이 요건을 잘 충족하면서 만화는 종이로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웹상에서도 볼 수 있다는 컨셉으로 만화 시장을 개척했다.여기에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열심히 몇 년간 노력해서 세계 시장을 뚫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 웹툰이 전 세계적인 팬덤을 이끌고 있고 웹툰을 소재로 한 여러 드라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2022년도에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웹툰이 어떻게 만화 종주국인 일본 망가의 아성을 위협하나’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을 정도였다. 그런 만큼 한국의 웹툰은 남다른 발상과 아이디어로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합: 끊임없이 변화하며 제3의 길을 찾아라…합 사례 기업 #1. 더현대 서울합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먼저 더현대 서울이 있다. 더현대 서울은 이름부터가 조금 파격적이다. 보통 백화점 이름을 지을 때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신세계 백화점 본점 이런 식으로 지역명이 뒤에 따라붙는데 더현대 서울은 지역명을 떼버렸고 백화점이라는 이름조차 떼버렸다. 백화점이지만 백화점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었다.더현대 서울은 면적의 49% 정도를 물건을 파는 매장이 아니라 조경 및 고객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실내공원 ‘사운즈 포레스트’로 여의도 공원을 70분의 1 크기로 축소해 조성했다. 뜬금없이 백화점에다 이런 공간을 마련했냐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오히려 매력 포인트가 됐다. 실내에서 편하게 녹음이 우거진 것을 보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여기서 쉬어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옆에서 재미있는 이벤트를 하면 거기 가서 구경도 한다.여의도라는 곳은 오피스 지역이기 때문에 주말에 유동인구가 많지 않다. 백화점은 고객들이 주말에 가장 많이 찾아오는데 이런 여의도에 백화점을 여는 것 자체가 실책이 아니냐는 얘기들도 있었다. 그런데 더현대 서울은 이런 선입견을 깼다. 더현대 서울은 이런 사운즈 포레스트 말고 갤러리도 있어 이 갤러리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더현대 서울의 또 하나의 특징은 팝업 스토어를 상시적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팝업 스토어는 잠깐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매장이다. 더현대 서울은 팝업 스토어를 1년 내내 종류를 바꿔가면서 운영한다. 더현대 서울의 디지털 리포트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2년간 더현대 서울이 진행한 전체 팝업 스토어는 321개에 달했다. 성공한 팝업 스토어로는 에버랜드의 푸바오 열풍을 이어받은 ‘푸바오의 집들이’, 약 200만명의 유튜버 구독자를 보유한 ‘빵빵이의 일상’ 속 캐릭터 빵빵이를 테마로 팝업 스토어, 그리고 9인조 소년 밴드 그룹 ‘제로베이스원’의 팝업 스토어, 중장년층의 향수를 겨냥한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이 더현대 서울에 놀러 와서 팝업 스토어나 이벤트를 사진으로 찍고 SNS에 올려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더현대 서울은 MZ 세대들의 놀이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크게 성장을 했다.더현대 서울은 백화점이지만 단순한 백화점이 아니다. 백화점이라는 업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체험이라는 새로운 놀이 요소를 가미했다. 더현대 서울이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은 시대적인 상황을 보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하고 2010년대 들어 티몬, 쿠팡 등 소셜커머스까지 활성화되면서 소비자들이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길을 돌렸다. 실제로 백화점은 오랜 기간동안 매출이 하락세였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을 유입할 수 있을까를 두고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다가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오프라인 매장을 체험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더현대 서울은 유통과 체험이 결합된 매장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2018년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쇼필즈’라는 유통 매장은 고객들이 물건을 구매하면서 특별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곳곳에 예술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 브랜드 매장이 미로처럼 펼쳐지는 이곳은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매장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놀이거리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예약제로 운영되는 가이드 투어 ‘하우스 오브 쇼필즈’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매장 곳곳을 다니며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시험 사용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벤트다.또 비슷한 사례로 맨해튼의 완구점 ‘캠프’는 테마에 따라 바뀌는 체험 공간에서 주 고객인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런던의 대표 상징물인 빅벤 주위에 영국과 관련된 제품을 배치해 아이들이 직접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이런 컨셉으로 꾸며놓은 놀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다 놀고 난 이후에 피규어나 장난감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결론적으로 더현대 서울은 다양한 물건을 구비하고 판매하는 백화점 업의 핵심을 유지하면서 매장을 문화 체험 공간으로 변신하는 전략으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브랜드 즉 합을 이끌어냈다◆ 합 사례 기업 #2. 슈나이더 일렉트릭또 다른 합의 사례로 얘기하고 싶은 기업은 슈나이더 일렉트릭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1836년에 설립된 프랑스 기업으로 처음에는 철강을 생산하던 전형적인 굴뚝기업이었다가 19세기 후반에 변압기와 발전기 등 전기 설비 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그러다가 1980년대에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기업이 너무 방만해서 적자도 많이 났고 계속 끌고 갈 수 없었던 사업 분야도 많았다. 그래서 불필요한 사업들을 전부 매각하고 알짜인 전기 사업만 남겨두는 대수술을 단행했다. 그동안 몇 대에 걸쳐 가족 회사 형식으로 운영되어 온 슈나이더는 방만한 경영이 가족 경영에서 비롯됐다고 자각하며 이때 가족 경영 체제를 그만두고 전문 CEO를 도입해 CEO 경영 체제로 탈바꿈했다. 슈나이더는 이렇게 첫 번째 대수술을 하면서 철강 기업에서 전기 회사로 거듭나게 됐다.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에 두 번째 대수술을 했다. 두 번째 수술로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전기에서 에너지 관리 및 제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바뀌었다. 첫 번째 변신이 기업의 존폐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뤄졌다면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진행됐다.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전기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 바뀌게 된 것은 고객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전기 공급을 하는 고객사로부터 전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요청하는 건수가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고객의 니즈라는 생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게 됐으며, 이것이 오히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판단하에 소프트웨어 쪽으로 사업을 다시 바꾸게 됐다기업의 변신이라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위험이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잘못했다가는 기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이 변신이기 때문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이렇게 두 번의 대수술을 겪었음에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가장 핵심이 되는 가치는 그대로 유지하고 그 변하지 않는 바탕에서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첫 번째 변신을 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전기를 남겨놨으며, 두 번째 역시 핵심이 되는 전기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에 대규모 수술에도 불구하고 업의 정신을 그대로 살릴 수가 있었고 지금까지 발전해 오고 있다.나는 장 파스칼 트리쿠아 슈나이더 일렉트릭 CEO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는 “우리의 변신은 고객의 주문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전기 기업이다 보니 에너지 효율에 대한 주문이 많았고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게 됐다. 우리는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해결책을 판다”고 말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제품이 아닌 해결책을 판다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번의 변신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컬럼비아 경영대 리타 맥그래스 교수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처럼 경영이 급물살을 타는 시대에 기업들은 마치 파도 타기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변신을 거듭해야 한다”고 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바로 이런 사례에 해당되는 기업이다.◆ “결코 안 된다고 말하지 마”지금까지 정 반 합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살펴봤다. 여기에서 인사이트 세 가지를 뽑아봤다.첫 번째는 ‘Never Say Never’이다. 직역하면 ‘결코 안 된다고 말하지 마’이다. 오늘날 트렌드가 너무나 빨리 변하다 보니 기업들이 유행을 쫓기에 급급한 사례들을 많이 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기업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채 트렌드만 쫓아가다 보면 강점을 잃어버리는 착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당장의 트렌드나 유행과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나의 사업이 남들과 차별화되고 또 나만의 확실한 강점이 있다면 트렌드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다. 그 예로 ‘비 리얼(Be Real)’이라는 소셜 미디어와 충무로 고래사진관을 들어보겠다.먼저 비 리얼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SNS 앱이지만 2019년 프랑스에서 출시돼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앱은 하루에 한 번씩 무작위로 알림을 보낸다. 그러면 이용자들은 2분 안에 즉석 촬영한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한다. 제한 시간 내 사진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사진을 보정할 수 없고 필터링을 돌릴 수도 없고 메이크업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사실 SNS라는 게 거칠게 얘기하면 허영심의 장이다. 이를테면 이런 곳에 가봤다, 맛있는 거 먹었다, 이런 공연을 봤다 등 뭔가를 자랑하는 공간이지 나는 오늘도 실패했고 상사한테 꾸지람들었고 시험에 떨어졌다는 등을 올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SNS를 오래 하다 보면 오히려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감으로, 기존 트렌드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비 리얼이다. 비 리얼은 허영심의 홍수 속에서도 내 모습을 찾고 싶다라는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SNS의 취지에 잘 맞지 않는 이 앱이 소수의 매니아 층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독특한 자신만의 차별화 요소가 가 있기 때문이다.충무로에 있는 고래 사진관은 입구에 들어가면서부터 필름 카메라들이 전시돼 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본인이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암실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암실에서 사진을 인화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디지털에 환멸을 느낀 MZ세대들이 많다. 또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인화한 사진을 바로 스캔해 SNS에 올릴 수 있는 공간까지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소수 마니아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독특한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해외 여행 잡지 같은 데서 한국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가 되고 있다.◆ “너의 강점을 알라”두 번째는 ‘너의 강점을 알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소개할 기업은 딥시크와 비야디(BYD)이다.딥시크는 올해 들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중국의 생성형 AI다. 딥시크는 미국의 AI 칩 규제로 인해 하드웨어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했다. 딥시크는 이런 불리한 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일반적으로 AI 프로그래머들이 AI를 개발할 때 쓰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쿠다(CUDA)라고 한다. 쿠다는 배우기가 쉽고 보편성이 있지만 GPU를 많이 잡아먹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딥시크는 PTX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디시크를 개발했다. PTX는 배우기가 어려운 언어여서 일반적인 AI 개발자들은 이 언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 대신 GPU를 정밀하게 사용할 수 있고, 하드웨어에 주는 부담을 덜어준다는 장점이 있다. 딥시크는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꿔서 독특한 AI를 개발한 사례다. 이를테면 구하기 쉬운 가성비 좋은 소재를 셰프들의 손맛을 살려 먹을 만하게 만들어 놓은 가성비 좋은 요리라고 할 수 있다.비야디는 원래 배터리 제조 회사로 2000년대 초반에 모토로라. 노키아 같은 휴대폰 기업에 배터리를 납품했다. 그러다가 외연을 확장해 전기자동차 시장에 진출했다. 처음에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았을 때만 해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어느 모터쇼에 비야디의 전기차가 소개됐을 때 미국의 자동차 전문가는 이런 차가 독일이나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5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비야디를 비웃었다. 그런데 비야디는 지금 테슬라의 턱밑까지 바짝 추격했다.비야디가 매우 빠른 시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다 특히 획기적인 배터리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야디의 블레이드 배터리는 매우 오래가는 배터리로 비야디의 성장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비야디는 자신의 고유한 강점에다 다른 장점들을 덧입혀 사업을 확장시켜 제3의 길을 걸어간 합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보류 ‘왜’세 번째 인사이트는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보루는 왜(why)’라는 것이다. why는 내가 그 일을 하는 뚜렷한 이유이자 목적의식이다.<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책을 쓴 마케팅 전문가 사이먼 사이넥은 “비행기 개발에 가장 가까이 가 있었던 사람은 새무얼 랭리였다. 그는 육군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비를 받았고, 그레이엄 벨 등 당대의 유력 인사들과 교분이 있었다. 그런 만큼 뭐하나 빠질 것 없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역사 속에서 비행기를 만든 사람으로 기록된 것은 시골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던 라이트 형제였다. 그 이유는 새무얼 랭리의 why보다 라이트 형제의 why가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사이먼 사이넥은 이 책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고 또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기업에는 모두 뚜렷한 why가 있다고 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why는 ‘우리는 고객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애플은 ‘세상에 흔적을 남기자’를, 마이크로소프트는 ‘집집마다 PC를’이라는 why를 가지고 있었다. 이 why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확고한 why 위에 정을 할지 반을 할지 합을 할지 자신들의 상황과 관점에 맞게 최적의 전략을 구사했고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게 사이먼 사이넥의 분석이다.그런데 뚜렷한 why를 가지고 출발한 기업도 시간이 지나고 규모가 커지면 원래의 신념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바로 그때 혁신이 사라지고 기업은 방향성을 잃고 헤맨다. 예를 들어 디즈니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why를 가지고 시작했다. 그런데 전형적인 기업가 스타일인 마이클 아이스너가 디즈니스의 지휘봉을 맡으면서 why가 퇴색했고 그래서 위기에 몰렸다. 이후 밥 아이거 회장이 디즈니의 why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원래 궤도로 돌아왔다.why는 한 기업 혹은 한 브랜드의 영혼이나 마찬가지다. why 없는 기업은 지속적인 생존이 불가능하다.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무엇을’이나 ‘어떻게’를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why만은 유지해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을 버리거나 바꿔도 why만큼은 기업이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유일한 보루다.<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영림원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아이티비즈 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아이티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OR
한국의 적대 정치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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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적대 정치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 원장 송호근 석좌교수가 3일, 204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적대 정치의 유산과 청산: 민주주의 회생 진단’을 주제로 강연했다.올해 3월 정치 몰락의 원인과 출구 찾기라는 부제로 <적대 정치 앤솔러지>를 출간한 송 교수는 “한국 정치는 극단적인 진영 논리 속에서 적대적 투쟁을 지속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보복 정치가 반복되고 사회적 화합보다는 분열이 조장되는 구조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번 강연에서는 이러한 ‘적대 정치’가 어떻게 고착화됐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 제도 개혁과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을 살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강연 내용.◆ 한국은 ‘선거민주주의’ 나라…권위주의가 부상하고 민주주의가 후퇴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산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올해 3월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5’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라 ‘선거민주주의’ 나라이며 심지어 권위주의가 부상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나라라고 진단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에서도 한국은 최상위 단계에서 탈락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됐다.12.3 비상계엄으로 찬탄과 반탄이 충돌하는 거리의 정치가 벌어졌는데 이것은 해법이 아니다. 비상계엄 참사를 빚은 정치체계의 원인과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1981년 스페인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실패했다. 당시 스페인은 국민소득이 6천달러~7천달러의 선진국이었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쿠데타와 경제 수준 간의 관계를 밝혔는데 국민소득이 6050달러를 넘으면 쿠데타는 실패한다고 했다. 2024년 한국의 국민총소득(GNI)은 3만6194달러였다.한국은 전 세계에서 뉴스 통합 즉 정보 통합이 가장 잘되는 나라이다. 제주도에서 발생한 일을 서울의 시민들이 알아내는데 2~3분도 안 걸린다. 이런 나라에서 비상계엄이 일어났다. 윤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2년 반 정도 동안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몰락했으며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 22년간의 적대정치는 우리가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의 기둥을 다 무너뜨렸다. 인용이 되든 기각이 되든 간에 이런 사태가 일어나게 된 그 원인과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똑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22년 전 시작된 적대 정치의 패턴은 계속 반복돼 왔으며 지금은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해졌다. 이를 설명하고자 <적대 정치 앤솔러지>라는 책을 냈다. 정치권은 지난 22년간 막말과 욕설이 난무하고, 시끄럽고 소란한, 되는 것은 없는 하류정치를 보여줬다.앞으로 적대 정치의 패턴을 끝장내고 대국민적 반성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 원로, 사회 원로가 필요한데 요즘에는 원로가 없다. 예전에는 종교 지도자나 대학교수 등 지도자 그룹에서 균형 잡힌 목소리를 냈으며 언론도 그런 역할을 했다. 그런데 20세기 한국을 끌어왔던 이 중추 조직들이 지금은 다 무너졌다. 예전 같으면 김수환 추기경이 한마디 하면 받아들였지만 요새는 종교계에서 뭐라고 하면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 존경받던 그룹들이 무너진 것은 사람들이 존경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대신 누구에게 존경심을 주고 싶어서인지 인기 배우나 가수, 운동선수 등을 찾아다니는 팬덤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사회에는 권위가 필요한 것 아닌가? 모든 것이 무너지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이뤄지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우리나라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만병통치처럼 쓰여지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 사실 정치는 싸움을 말리고 해결하는 것이다. 이게 안되니까 사법부에 가서 해결해달라고 요구한다.◆ 한국 적대 정치의 특성 세가지우리나라 적대 정치의 특성은 크게 세가지다. 첫번째, 대통령의 실패를 노리고, 두 번째, 의회가 대통령을 무한 공격하고. 세번째, 정당 정치가 패거리 정치로 전락하면서 대변 기능이 붕괴했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정당의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다른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게 하고, 이를 통해 상대 정당하고 정면 충돌하는 형태가 지난 20여년 동안 이어져 왔다. 양당이 충돌로 치닫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중간의 제3당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적대 정치가 심화됐다. 그런데 미국도 양당 체제이지만 잘 돌아간다. 그 이유는 ‘헌법 조항에 있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무너지니까 이렇게 하지 말자’고 타협을 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 정치는 민주주의 핵심인데 한국은 패거리 정치로 전락한 탓에 윤 정부 들어 지난 2년 반 동안 여야가 합의한 유일한 것이 개식용 금지법이었다, 최근에 연금개혁에 최종 합의했지만 젊은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지는 못했다.한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이지 않은 적대 정치의 모든 유형이 진열돼있는 상태다. 그래서 책 제목을 <적대 정치 앤솔러지>로 정했다.양대 정당의 적대적 다툼은 참여정부가 그 시작점이었다. 2003년에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집권 중반 이후 민주화 운동 방식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했다. 경쟁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척결했다. 민주주의는 적과 동침해서 서로 타협도 하고 토론도 하고 합의를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권 내부를 방어벽으로 둘러치고 캠프정치, 밀실정치를 했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정치의 기본 원칙은 여야 합의여서 막후 타협을 하곤 했다. 보수와 진보 또는 좌우로 나눠져 있어도 그전에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동지애가 있었기 때문에 협력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국회의원들 서로가 잘 모른다. 현재 국회의원 300명 중에 60명이 율사 출신인데 법대 출신이 정치를 꼭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1805~1859)은 젊은 나이에 미국 여행을 했는데 약 1년 동안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 정치의 현장을 둘러봤다. 그는 프랑스에는 없는 것이 미국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이 교회에서 모여 얘기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왕조가 없는 역사였기에 이게 가능했다. 그래서 ‘미국 예외주의’라는 말이 나왔다. 왕조에서 민주 국가로 전환하는 게 모든 나라의 일반적인 패턴이었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자치가 태어났다. 자치가 점차 성장하면서 ‘도덕적이고 지성적인 리더십’이 자라났다. 이 ‘도덕적이고 지성적인 리더십’은 미국이 민주주의 제도를 운용하는 정신이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깰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데 그동안 깨지지 않고 지속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신 때문이었다. 물론 트럼프는 예외다.아무튼 정당 정치가 작동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움직이면 민주주의는 회생하기 힘들다. 지금 한국 정치는 서까래가 무너지고, 내부는 썩은 폐가와 같은 상황이다. 폐가 속에서 양쪽으로 나뉘어져서 열심히 싸우고 있다. 좀 과한 평가일지 모르겠으나 우리 국민들이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적인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38년, 우리는 진정 이런 정치를 바랐던가?”유럽은 정당 정치를 통해 계급과 종교, 언어, 지역 등으로 인한 균열을 메우고 타협점을 찾아간다. 유럽에서 정당을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구분선은 종교와 계급이다. 먼저 기독교와 천주교가 나눠지고, 그 다음에 계급 정당이 있다. 정당의 수는 지역별로 적게는 5개에서 많으면 25개에 이르는 다당제로 이뤄져 있으며, 정당 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등 협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등은 사회적 구성요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 이질 집단 간 타협과 협의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이른바 협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우리나라에서 정당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선은 무엇일까? 답하기 어려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지역이다. 동서로 구분돼 있는 지역선이 국가 성장이나 정치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전에는 이 지역을 기준으로 투표를 했는데 최근에는 약간 옅어지고 이를 이념이 덮어버렸는데 지역과 이념이 겹쳐지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든다. 이걸 겹쳐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정치인데 겹치게 해서 계속 정치적인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수법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를 하지만 선택지가 별로 아니 거의 없다.김훈의 소설 중에 <개>라는 작품이 있는데 ‘보리’라는 진돗개가 주인공이다. 보리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비웃는다. 이 소설을 보고 2024년 1월 24일 한 일간지에 ‘개에 대한 명상’이란 글을 썼다. 내용은 이러하다. “진돗개 보리가 요즘의 정치판을 본다면 뭐라 할까, 그냥 컹컹 짖고 말까, 아니면 개판이라 할까. 개에 등급을 부여한 건 인간이다. 애완견, 경비견, 탐색견처럼 특정 임무를 받은 개를 견으로 불렀고, 버려진 잡초 같은 개는 구자를 붙였다. 몸 색깔에 따라 황구, 흑구, 백구다. 황구로 태어난 ‘보리’는 정치판에 구자를 붙여도 좋을 사람이 그득하다는 사실을 놀라워했을 것이다.”양대 정당의 적대적 다툼은 참여정부부터 시작됐다고 했는데 노무현 정권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4대 악법 철폐가 실패하고 나서 보수당이 탄핵을 걸었다. 탄핵 기각 후 2004년 치러진 총선에서 152명에 달하는 386 운동권이 대거 진입했다. 그때부터가 적대 정치의 출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이해찬 의원은 “진보 정치 50년이 기약돼 있다”고 말했다. 당시 보수당은 천막당사를 운영하며 국민에게 사죄하고 컴백할 수 있는 기회를 벌었다. 그런데 문제는 국회에 등장했던 386 운동권들이 재벌, 보수정당 등을 모두 적으로 규정하고 적은 사라져야 한다고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이를 막아서면 배신자 딱지를 붙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임기 말에 보수정당과의 연정, 한미 FTA 등을 추진하자 당에서 제적을 시켜버렸다. 이렇게 시작한 적대 정치는 전혀 성격이 변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져 지금까지 이르렀다. “민주화 38년, 우리는 진정 이런 정치를 바랐던가”라는 회의감이 든다. 이 문제를 두고 혹자는 우리나라는 시민사회 기반이 취약해서 그렇다는 말을 한다.◆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세상에 없다”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는데는 100년에서 150년이 걸렸다. 긴 시간동안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든 것이다. 독일은 1840년대에 시민사회가 발전했는데 이 시민사회를 만들어낸 주역은 두 그룹이었다. 하나가 교양 시민이고 또하나는 경제 시민이다. 교양 시민은 대학교수나 예술가 등 전문가 그룹이며, 경제 시민은 시장을 만들고 경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교양 시민은 이 경제가 잘 작동하도록 교육도 하고 법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40~50년간 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 계급이 치고 올라왔다. 시민사회의 주축 세력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 속에서 이 노동 계급을 받아들여 노동 계급이 만든 노동당과 토론하고 협력했다.시민사회라고 해서 처음부터 건전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시민사회는 독점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히자 수용을 했다. 이렇게 하면서 민주주의 체계를 만들어나갔다. 이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러니까 자유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사상가로부터 시작해서 교양 시민과 경제 시민은 자유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엄청나게 논의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국가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양보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는데 그 양보란 공공성을 위한 것이었다. 자유주의가 바탕에 잘 깔린 국가에 민주주의가 내려앉는다. 유럽에서는 100년에서 150년에 걸쳐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유주의를 발전시켰다.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7년 이후이다.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의 경제 시민과 교양 시민이 깔아놓은 것에 민주주의가 그냥 내려앉아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막 섞여버렸다는 점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40년이 됐다. 우리는 자유주의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다. 자유주의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은 채 민주주의로 전부 커버하고자 하는 욕심들이 엄청나게 많다.자유주의는 첫 번째가 양보하는 것이다. 양보는 ‘욕망의 자제’다. 권리와 책임이 있으면 책임을 먼저 완수하고 그 다음에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자유주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87년부터 사람들이 권리 투쟁을 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자유주의 기반이 엄청나게 약한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내려앉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세상에 없다. 이를 좀 유식한 말로 하면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이다. 이 말은 시장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없다는 뜻으로 사회과학에서 흔들리지 않는 명제다. 부르주아는 자본가 계급이기도 하지만 시민 계급을 의미한다.우리는 식민 시대에 부르주아를 만들지 못했다. 이 역사적인 결핍을 안다면 책임을 다했는지 반성하고 권리만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에 대한 존경이 필요하다. 그 세금으로 우리가 복지를 받고 최저 생활을 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헌신하는 것이 복지의 조건이다. 경제는 압축 성장이 가능하지만 정치, 사회의 성장은 모든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명법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몰락한 이유자유민주주의와 비교해 한국적인 정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몇 가지만 지적해 보겠다. 첫 번째는 경로 단절이다. 보수든 진보든 간에 그간 7개의 정권이 제일 먼저 한 것은 기존 정권의 노선과 정책의 폐기였다. 기존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자기의 정통성을 세워나갔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몰락한 이유다. 세계에서 이런 나라는 별로 없다.두 번째는 몰역사적인 논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로부터 태어난 것인데 그 부모를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기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부터 자유주의가 본격 시작됐지만 이 자유주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유주의가 개인주의로 전락되고 있다. 개인의 동굴로 들어가서 내 인생을 즐기는 것이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이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은 생각하지 않는다. 세금도 좀더 내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이런 의식들이 있어야 된다.세 번째는 자유와 평등 간의 투쟁이다. 이 둘 중 어느 쪽을 확대하고 줄일 것이냐는 문제는 세계적으로 1860년대부터 지금까지 해결이 안됐다. 현재 전 세계 200개 국가 중 약 70%인 140여개 국가가 권위주의 체제이며 30%는 민주주의 체제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난 150년 동안 고민했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자유와 평등의 비율 어떻게 조정하냐는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를 좀 줄이고 평등을 키우는 쪽으로 합의를 했다.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아직 합의가 안 된 상태다. 강한 평등주의 심성에다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이 더해져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짓누르고 있다.네 번째는 구조화된 신념이다. 우리나라에 이데올로기 투쟁이 엄청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핵심은 딱 두 개다. 이 두 개만 없으면 이데올로기 투쟁이 사라지거나 다른 데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민족 문제로 친미냐 친북이냐는 이념 균열이며, 또 하나는 분배 문제로 성장-분배 간 균열이다.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는 1920년대부터 등장해 논의되다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아주 급격하게 경직돼 있는 상태이다. 지금 사회에서 나오는 많은 이슈들이 사실은 전부 이 두 개로 수렴이 된다..친북-친미, 성장-분배라는 두 개의 이념적 짝은 다른 국가의 경우 인종과 종교적 분절만큼이나 강한 분절 요인이 됐다. 이 두 개의 구조적 신념에 근거해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이데올로기적 대립 양상은 강력한 정치적 균열로 발전했으며 몇 차례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가장 뚜렷한 분열 요인이 됐다. 이 구조화된 신념을 정치인이나 지성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좀 유용하게 만들어주면 좋은데 이게 안 되고 있다. 국가 정체성이 분열하는 이유다. 광화문은 동원과 분열 정치의 세계적 명소가 됐다.다섯 번째는 민주주의 위협 요인의 증가이다. 민주주의는 19세기 후반의 발명품으로 20세기에 성장했다. 그런데 21세기에는 그 성장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성장의 핵심 요소인 경제 성장, 단일 민족, 엘리트 중심의 여론 즉 공론장의 형성 등 세가지가 다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률은 제로로 가고 있으며, 이민과 난민 수용으로 민족 내부 구조에 균열이 가고 있다. 또 엘리트 중심의 공론장은 유튜브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저성장, SNS, 다인종사회 주창그룹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여섯 번째는 지성의 3축인 대학, 언론, 종교의 몰락 즉 지성의 몰락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권위에 대한 존경의 철회가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202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는 <좁은 회랑>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는 국가의 힘과 사회의 힘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취약한 체제라고 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좁은 회랑에 있다가 국가의 힘을 강하게 하는 쪽으로 이탈하면 독재가 되고, 사회의 힘 쪽으로 벗어나면 무질서한 사회가 된다. 우리나라는 지금 통치력이 사라진,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파손된 상태다.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된다.적대 정치가 빚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헌이라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1987년 헌법은 수명을 다했다. 또 비판적 중도층이 이념과 거리를 둬야 하며, 자격을 갖춘 정치인을 배양해아 한다. 그리고 양심, 상식, 도덕 등 사회적 기본 규범에 대한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운명은?대한민국은 대대로 두 개의 단층선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두 개의 단층선은 군사적 단층선과 역사적 단층선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의 윤곽을 정해버렸다. 이런 국가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군사적 단층선은 비무장지대를 동서로 긋는 휴전선이며, 역사적 단층선은 일제 제국주의에 짓밟힌 국가들의 반일 전선이다. 한국은 군사 단층선에서 미·일 동맹에, 역사 단층선에서 북한·중국에 속해있다. 우리는 이 두 개의 단층선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뛰어넘을 수 있을까? 조망적 시선으로 시야를 넓힌다면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인공지능이 이끌고 있는 21세기의 문명 전환은 두 개의 단층선을 초래한 국제적 국내적 요인들을 바꿔놓을 것이다. <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 영림원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아이티비즈 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아이티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OR
AI 시대 경영자는 경영 차원의 리버럴 아트 알고 행함으로써 성과 만들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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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경영자는 경영 차원의 리버럴 아트 알고 행함으로써 성과 만들어내야
“경영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능인 동시에 리버럴 아트다. 경영자에게 리버럴은 ‘아는 차원’에 속하고, 아트는 ‘행동하는 차원’에 속한다. 경영의 리버럴은 앎, 성찰, 지혜, 리더십을 다루는 반면, 아트는 실천, 행동, 결과를 다룬다. 경영자는 지식을 통합해서 성찰하고 실천하며 결과를 냈을 때만, 비로소 경영의 리버럴 아트를 완성할 수 있다.”미라위즈 대표 송경모 박사가 13일, 203회 영림원CEO포럼에서 ‘AI의 시대, 성찰하는 경영자의 리버럴 아트’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던진 핵심 메시지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학자이지만 경영의 구루 ‘피터 드러커’의 사상을 접하면서 ‘경영’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뜬 송 박사는 이번 강연에서 AI를 어떻게 경영에 활용할 것인가를 화두로 “AI 시대 경영자는 경영 차원의 리버럴 아트를 알고 행함으로써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한 사회가 어떻게 전체주의로 전락하는가?나는 2024년 11월에 라는 책을 냈다. 지식, 예술, 도덕, 소유, 단절, 정의, 사회, 종교, 시간 같은 주제들을 가지고 경영자의 입장에서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에서 이런 주제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가를 고민한 책이다.먼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뭘 하는 사람인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행동과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목적과 가치를 분명히 갖고 일한다면 생활 태도 특히 직업인으로서 자기의 삶은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서점에 가면 경제·경영 코너가 있다. 경제와 경영을 같은 부류로 취급한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자기계발’이 붙어 있다. 뭔가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경영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 현상과 일치시킬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기업 경영자 단체의 이름은 한국경제인협회(구 전국경제인연합회)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인들은 스스로 경제인이라고 규정하고 거기에 걸맞은 활동을 하고 있다.피터 드러커(1909~2005)는 경영의 구루, 즉 스승으로 일컬어진다. 이 경영사상가는 20세기 여러 경영사상가 중에서 가장 큰 산맥을 형성했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사상가로 전향하기 이전에 법철학자였다. 그의 첫 저서는 1939년에 출간한 <경제인의 종말>이었는데 한 사회가 어떻게 전체주의로 전락하는가?를 분석했다. 법철학 사상에 의거해 독일에서 히틀러가 득세해 정권을 잡고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파시스트당을 만들어 전체주의를 일으키던 시대를 분석했다. 피터 드러커는 전체주의는 대중의 절망 즉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다고 했다.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마법사 같은 사람이 나타나 한순간에 사회를 탈바꿈시켜주는 리더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경제인의 종말>의 내용은 매우 방대한데 핵심은 ‘근대 경제주의 세계관이 인간의 자유와 정신성을 오도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오로지 경제주의에 입각해 분석하고 특히 세상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인간의 자유와 정신성을 오도했고 그 틈을 타 전체주의 리더가 등장해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사람이 등장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그래서 <경제인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달았다.피터 드러커는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도피했는데 케임브리지 대학의 유명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만났다. 케인스는 피터 드러커가 워낙 영민한 것을 보고 경제학자가 되어볼 것을 권유했다. 그때 젊은 피터 드러커는 경제학은 별로 연구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경제학은 상품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나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을 연구하고 싶다”였다.피터 드러커는 <경제인의 종말>을 집필한 후 유명해졌으며 그 이후에 <산업인의 미래>를 펴내며 관심사를 산업사회로 옮겨갔다. 산업인이라는 인간형은 19세기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 유형으로 다시 말해 공장에 출근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 산업인들로 구성된 나라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유와 희망 등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후 제너럴 모터스의 알프레드 피처드 슬론 주니어로부터 제너럴 모터스에 대한 경영 진단을 의뢰받았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는 제너럴 모터스로 출퇴근을 하면서 외부인의 시각에서 회장을 포함한 임원들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과 의사결정을 보고 1946년 <기업의 개념>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바로 이 책의 저술을 계기로 피터 드러커는 경영사상가로 자리잡고, 산업사회의 핵심은 ‘기업’이라고 보고 자신의 연구를 기업에 집중했다.◆ “자유로운 개인에게 사회적 지위와 기능 부여하는 게 기업의 역할”피터 드러커가 펴낸 <기업의 개념>은 현대 경영 사상의 초석을 이룬 최초의 책으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이전에 경영학이 없었던 게 아니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현대 경영학에 준하는 여러 독립 지식들이 있었다. 회계, 생산관리, 물류관리, 재무, 판매, 행정관리, 법무 등 이 모든 지식들이 이미 학문으로서 성립돼 있었으며, 이런 것들을 통합하려는 움직임들이 있었다.20세기 초에 경영학 연구자들은 이 신생 융합 학문에 대한 이론적 정체성을 경제학에서 찾았다, 20세기 초에 여러 학문 분과에서 기업을 연구 주제로 다루고 있던 유일한 학문이 경제학이었다. 그 중에서도 신고전파 경제학은 한계 이론에 바탕을 두고 기업의 수학적 이익 극대화 모형을 완성해 놓은 상태였다.경영학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기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라고 했으며, 이러한 이론은 경영학 이론서와 대학 교과과정에서 적극 채택되면서 확산됐다. 이는 현실 사업가들의 표면적 동기와도 일치한다. 사업가들은 “돈 벌려고 사업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드러커는 <기업의 개념>에서 기업은 두 가지의 속성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고 봤다. 하나는 경제적 기구이고 또 하나는 사회적 기구다. 기업은 수익을 발생시켜야 존재할 수 있다는 경제적 기구라는 관점은 그렇다 치고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 기구라는 또하나의 관점이다. 사회적 기구라는 것은 자유로운 개인에게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부여하는 역할을 기업이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이지만 산업사회 이전에는 어떤 개인에게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 것은 태어난 출신 성분이었다. 여기서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말은 매우 인문학적이다.드러커는 <기업의 개념>에서 귀족과 성직자들이 지배하던 구대륙 유럽 사회에서 귀족이나 성직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절망이 아메리칸 드림으로 해소됐다고 얘기한다. 드러커의 설명에 따르면 18세기 이래 아메리칸 드림은 유럽인들에게 ‘일종의 신약(promise)’이었다. 바다 건너에 아메리카 대륙에는 귀족이 없다는 것은 유럽인들한테는 어마어마한 희망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막 생기기 시작한 기업을 통해서 구원에 대한 믿음을 형성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회였다.드러커는 자유로운 개인에게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부여하는 역할을 얘기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을 처음 내놓는다. 그는 기업의 경제적 역할은 필수적이지만 여기에만 머물면 기업은 자신의 소명 즉 사회적 기구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의론을 얘기한다. 자유로운 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합당한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고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인가를 정의의 문제로 봤다.◆ 경영에 리버럴 아트와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피터 드러커가 1954년에 낸 <경영의 실제>는 기념비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 피터 드러커는 ‘사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고객 창조이다’라고 말한다. ‘고객 창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경영자들 사이에서 상식이 됐다. 드러커는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데 목적과 수단을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이익은 기업이 필수적으로 행해야 할 의무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드러커는 이 책에서 한 사회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경영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했다. 자원, 자금, 노동력, 지식 등이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영이라며, 경영의 중요성을 그만큼 부각시켰다. 또 경영은 고도의 전문 지식이라고 했다. 전문 경영은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평범한 지식이 아니라며 최고난도의 곡예(acrobatic feat)에 비유했다. 곡예를 보면 어떻게 저런 동작을 하지 경탄을 하는데 곡예사는 이 동작을 이루기 위해서 엄청난 훈련을 했을 것이다. 경영은 이 정도로 어려운 과학이다. 오랜 훈련과 학습, 균형 유지 그리고 전체를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경영대학에서는 경영관리, 국제경영, 재무금융, LSOM, 마케팅, 회계 등의 과목들을 배운다. 경영학의 주요 커리큘럼이다. 이것들을 공부하면 경영지식이 생기는가? 리버럴 아트와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스티브 잡스는 2011년 아이패드 2를 출시하면서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세상을 흔들어 놨다. 애플의 DNA는 리버럴 아트와 결합되고 인문학과 혼인한 기술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이 얘기를 한 후에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리버럴 아트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경영학 책은 잘 보지 않고 주로 인문학 책을 보면서 경영의 아이디어를 거기서 찾아냈다고 했다. 피터 드러커 본인도 경영학 책은 별로 읽지 않고 문학, 사회, 역사, 과학, 예술 분야의 책들을 계속 읽으면서 자기의 경영 사상을 도출했다. 실제로 드러커의 여러 저서들을 유심히 보면 경영사상가를 직접 인용하는 것은 많지 않고 주로 철학자, 자연과학자 등 경영 아닌 분야의 책들이나 사상을 언급하는 부분이 매우 많다.201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출판계에서는 시 읽는 CEO, 오페라 읽는 CEO, 철학 읽는 CEO 등 인문학을 주제로 하는 책들이 쏟아졌다. 또 고전 읽기가 유행하고,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자들의 특강, 더 나아가 공연 관람이나 문화 예술 체험 등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런 인문학적 활동들에는 인맥 넓히기나 과시욕과 같은 허세도 좀 작용했다. 경영자가 인문학을 대할 때 단순히 인맥을 쌓고 자기 포장용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텍스트만으로도, 현장만으로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41)는 일본 근대 자본주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메이지 유신 시대 이후에 수많은 기업들을 설립했고 일본에 금융 시스템, 자본시장, 증권거래소 등이 도입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이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2024년에 일본 1만엔 짜리 지폐의 인물로 선정될 정도로 일본 사회에서 추앙을 받는 위인이다. 일본이 그동안의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롭게 찾은 아이콘이었다. 이전 1만엔권의 인물은 메이지 시대의 개화론자 후쿠자와 유키치였다.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논어와 주판>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많이 읽혔는데 기업 경영의 핵심 요체가 ‘논어’에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어를 수백 번 통독하면 경영 지식이 생기는가? 조선시대는 논어를 암송하다시피 공부한 선비들로 가득찬 사회였지만 거기서 근대 자본주의가 나온 것은 아니잖은가. 이 대목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지식의 상호작용이다.지식에는 업역 지식과 추상 지식이 있다. 업역 지식은 도메인 지식으로, 실행에 필요한 실무 지식이다.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려면 그 분야에 필요한 지식이 있다. 특정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다루거나 자재나 상품, 고객을 알아야 하는 지식이 업역 지식이다.추상 지식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의 특성을 추상적으로 집약한 지식이다. 예를 들어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은 다른 걸 아무리 잘해도 결국 사람을 어떻게 채용해서 어떻게 쓰느냐가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추상적 지식은 상징과 비유로 이뤄져 있다. 각종 고전, 경전, 속담, 위인들의 말들이 그것이다. 논어를 수천 번 읽었다 하더라도 업역 지식이 생기지는 않는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업역 지식을 쌓은 후에 다음에 거기에서 추상되어 나오는 지식을 논어 속에서 발견했다. 출발은 업역 지식이며 거기에서 추상 지식이 나온다는 얘기다.베토벤은 “손가락이 아니라 마음으로 연주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피아노를 탁월하게 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하며 쌓은 업역 지식이 뒷받침되어 나온 말이다. 일을 실행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경험을 쌓았느냐에 따라 그 일을 느끼는 차원은 전혀 다르다. 업역 지식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일의 진가를 느끼는 때가 온다. 박세리 선수는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이제야 골프가 뭔지 좀 알 것 같다”고 했다.피터 드러커는 이 업역 지식과 추상 지식을 현장 지식과 사고 지식으로 얘기했다. 경영자라면 반드시 현장 지식과 사고 지식의 상호작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드러커의 지론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경영 원리는 현장에서 나왔으며 학계에서 나온 것은 별로 없다”라면서도 “현장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고 지식을 통해 이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현장을 모르는 지식인들이라고 깔보지 말고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되 항상 지식인들이 했던 얘기를 내 일에다 반추해서 거기에서 다시 한번 자기의 지식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을 대하는 태도이며 리버럴 아트의 역할이다.텍스트만으로도, 현장만으로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인 앎의 수준이 형성되어 있어야 질문을 할 수 있다. 초등학생은 대학생 수준의 질문을 할 수 없으며, 특정 업역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거기에 맞는 질문을 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 ‘질문’은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해 생기는 게 아니다. 본인이 사고 지식을 자꾸 접하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옳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하는 습관을 들여야만 가능하다.어떤 일을 해내기 어렵거나 고전이 읽기 어려운 이유는 아직 근육이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은 방대하게 연결된 근섬유 네트워크와 같다. 이 근육이 올바르게 형성되기 위해서는 경험이 쌓여야 된다. 그 경험도 그냥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현장 지식과 사고 지식 사이에 상호 반추가 있어야 된다.◆ “경영은 인문학의 과업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행위”피터 드러커가 바라본 경영의 본질은 지식을 생산적으로 만드는 활동이며, 사회적 기능이며 그리고 리버럴 아트였다. 드러커는 1989년에 펴낸 <새로운 현실>에서 리버럴은 깨닫는 것이며, 아트는 실천해서 결과를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리버럴은 인식과 지혜를, 아트는 응용과 연습과 창조를 추구한다.이 대목에서 경영의 뉴 노멀을 말하고 싶다. 경영은 경제적인 어떤 이익을 구현하는 활동이기도 하지만 인문학의 과업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행위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경영의 여러 지식들을 포기하거나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며, 극복하고 지양해야 한다. 경영의 과업은 인문학의 궁극적 지향점과 동일하다. 진리, 자유, 정의, 아름다움, 행복, 헌신, 초월, 창조 등이 그것이다. 지식인들은 이 문제를 그냥 언어로만 다루고 끝나지만 경영자들은 이것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모든 경영 지식은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는 숙명을 안고 있다. 경영 환경은 경영자의 기존 지식이 끝없이 오류임을 드러내는 메커니즘이다. 이를테면 A영역에서는 통했지만 B영역에서는 안 통한다. 또 어제는 통했지만 오늘은 안 통한다. 얼마 전에 올리브영 사례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소개됐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화장품 사러 올리브영에 가지 않고 다이소로 간다. 불과 1년 사이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다이소 모델도 또 언제 또 폐기될지 모른다.모든 경영 환경은 기호다. 기호는 텍스트, 이미지, 음성, 소리, 사건 등 기표(signifier)와 숨겨진 메시지인 기의(signified)로 이뤄져 있다. 경영자는 기호를 읽는 훈련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영자가 메시지를 읽는데 실패한다. 아는 범위 내에서만 알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이 기호를 읽는 능력을 강화해주는 것이 리버럴 아트다.신보수주의 정치절학자 레오 스트라우스는 고대 이래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 문필가는 자신의 의도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노골적으로 썼다가는 대중의 오해와 핍박, 권력의 탄압을 받을까 봐 살짝 돌려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영 환경이라고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본뜻을 숨기는(esoteric) 텍스트다. 이를테면 시장의 변화라든지 사람들의 행동 등은 절대로 자신의 본뜻을 경영자에게 드러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경영자의 몫이다.유능한 경영자들은 누군가는 그냥 지나친 현상을 캐치해 낸다. 이런 능력은 평소에 인문학적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냥 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경청의 리더십이라는 것이 한때 유행했다. 인문학을 좀 훈련한 사람들이라면 경청의 리더십이 얼마나 사람들을 오도하는지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당연히 경청해야 한다. 하지만 경청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경청해도 무엇이 진실인지 잘 들리지 않는다.두가지 예가 있다. 하나는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의 파워포인트에 관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피스웨어를 만들 때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는 포함됐지만 파워포인트는 없었다. 임원들이 프리젠테이션 전용 소프트웨어인 파워포인트를 넣자는 의견에 빌게이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무시했다. 그러다가 임원들이 계속 얘기하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라며 파워포인트를 끼워놓았으며 결국에 이 사업은 대박이 났다.그 반대 예는 이병철 회장 얘기다. 1983년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자 삼성 내부 임원진들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들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대했다. 가전제품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시기상조라는 주장이었다. 임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 회장과 함께 반도체 사업을 추진한 이건희 부회장은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의 지분을 인수했다. 여기서 시사하는 것은 본인이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오랜 기간 훈련과 학습을 통해서 남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빨리 캐치해 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경영자의 본원적 무지는 숙명이다. 그 현실적인 대안으로 피터 드러커는 ‘목표와 자기 통제에 의한 경영(MBOS)’을 주장했다. 그는 한 가지의 ‘맞음’이 계속 통용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그래서 계속 목적, 목표, 성과를 주기적으로 재확인해서 피드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동력은 질문하는 능력에 있다.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피드백하려면 ‘왜 꼭 이 방식으로 해야만 되는가?’,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우리가 달성한 성과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일을 해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등에 대해 질문하는 습관이 있어야만 한다.◆ ”질문하고 성찰해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찾아야“인공지능에 대해 몇 가지만 얘기해 보겠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물은 본질상 원재료이다. 경영은 원재료에 그 이상의 가치를 부가하는 행위다. 인공지능의 결과물도 부가가치를 부과하는 행위를 누군가 해줘야 한다. 이 일은 경영자만이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지식 노동자의 신종 자본재이다. 초고성능의 다이내믹한 사전과 다를 게 없다.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은 ’아웃라이어‘일 것이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확률적으로 가장 발생 가능성이 높은 토큰을 배치하는 시스템이다. 평균화되고 관행화된 지식은 AI로 흡수될 것이다. 이 모범 답안에서 벗어난 생각을 할 줄 알고 그 쪽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기회가 있는 세상이 올 것이다.오프라인이나 아날로그, 고풍에 대한 욕구는 다른 형태로 살아날 것이다. 가령 휴머노이드 유모와 사람 유모가 있는 세상이 온다면 저소득층들은 휴머노이드를 쓰고, 고소득층들은 잘 교육받은 훈련된 사람 유모를 쓸 것이다.AI는 업무를 해주는 것이지, 경영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업무라는 것은 경영이 이걸 해야한다고 부여했을 때야 수행 가능하다. 모든 업무 체계는 결국 최상위의 ’경영 행위‘에서 출발해서 형성된다. 경영은 결코 업무일 수도 없도 업무여서도 안된다. 업무의 완전 자동화는 가능해도, 경영의 완전 자동화는 불가능하다.수필가 피천득은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 나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가고 한가한 사람이란 시간과 마주 서 있어 본 사람이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다. 성찰하는 삶은 철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일에만 매몰된 삶은 경영자와 지식 노동자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심한 시대는 더욱 그러하다. 또 맨날 독서하고 강의만 들으러 다닌다고 해서도 길은 나오지 않는다. 현장 지식과 사고 지식 중에서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절대로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길은 오직 성찰을 통해서만 나오고, 질문은 자기 자신을 성찰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19세기나 20세기에는 부지런한 사람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질문하고 성찰해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찾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영림원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아이티비즈 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아이티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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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기록은 은폐·과장·왜곡·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중경 국제투자협력 대사가 6일, 202회 영림원CEO포럼에서 ‘한국사의 재해석을 통한 역사인식의 전환’을 주제로 강연했다.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내고 현재 한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중경 국제투자협력 대사는 이번 강연에서 “한국사 기록은 은폐, 과장, 왜곡,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비판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잘못된 역사기록을 방치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흐리게 하고 도덕의식과 애국심,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가치를 무너뜨린다. 더 늦기 전에 잘못 쓰인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차제에 우리 역사교실을 암기 위주에서 토론 위주로 바꿔야 한다. 역사교육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략적 사고 능력을 키워주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올바로 쓰인 역사를 가르치고 토론할 때 바람직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고 국가와 민족의 진로를 제대로 설정하는 전략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강연 내용.◆소비자 관점에서 역사 기록 합리적으로 재해석 = 발상이나 인식을 전환하면 역사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기회를 창출하고 의외의 해답을 얻을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록펠러는 유정 개발이나 석유 채굴에서 가공, 유통 쪽으로 눈을 돌려 정유회사와 철도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함으로써 어마어마한 돈을 모았다.역사 공부도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의외로 답이 있고, 또 거기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 2020.11>와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2023.11>이라는 두 권의 책을 썼다. 관점을 살짝 바꾼 것인데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나는 역사를 전공한 적이 없다. 더 좋은 가전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역할이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나는 소비자 관점에서 역사 기록을 합리적으로 재해석했다. 그 첫 번째로 승자에 의한 왜곡 가능성을 탐색했으며, 두 번째, 역사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를 외면하고 선악의 논리(도덕)를 앞세워 사실과 인과관계를 왜곡함으로써 엄중한 책임을 회피한 역사적 사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세 번째, 세계사, 동양사 관점에서 한국사를 재해석하고, 네 번째, 현대 이론으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논리적인 반박과 추론을 했다.역사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능력을 배양하는 과목이다. 특히 실패한 역사는 전략적 사고능력을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재다. 실제로 유럽의 어떤 나라에서는 역사 교육의 목표는 전략적 사고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지침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국사 과목을 대학교 수능 시험에서 상당 기간 빼버리면서 그 이유로 수험생들의 암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 역사 교육을 보는 당국의 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역사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으며 역사 공부에서 남는 게 없다.◆승자에 의해 왜곡된 백제 멸망의 역사 = 첫 번째, 승자에 의한 왜곡 가능성의 탐색이다. 역사는 이긴 자가 붓을 잡고 쓰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승자의 왜곡이 존재하기 마련이다.나는 어렸을 때 백제 멸망 과정에 의문점을 갖고 있었다. 백제가 멸망한 원인을 의자왕의 사치와 방종으로 국운이 기울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백제 멸망 과정에서 백제 운명을 건 최후의 전투가 황산벌 전투이며 여기에 동원된 백제군의 규모가 5천명에 불과했다는 역사 서술은 믿기 어렵다. 의자왕이 항복한 후 백제 부흥군이 강력한 군사력을 보이며 나당연합군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미 국운이 기울어 민심이 떠났다면 부흥운동이 있을 수 없다. 최후 결전을 위해 긁어모은 군대가 5천명에 불과했다면 막강한 전력을 갖춘 정규군인 백제부흥군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당에서 솟아났다는 말이 된다. 만약 백제군이 5천명 밖에 안되고 의자왕의 실정으로 민심이 피폐해졌다면 무엇 때문에 당나라 군대를 불러들였을까? 신라 혼자의 힘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역사 서술은 백제 멸망의 과정에서 뭔가 숨기고 있다는 증거다. 백제는 의자왕이 사치와 방탕을 일삼고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멸망한 게 아니다. 부하가 배신하는 바람에 나당연합군과 단 한 차례도 싸워보지 못하고 의자왕이 사로잡혔다. 의자왕은 사비에서 북쪽에 있는 웅진으로 몽진을 하는데 황산벌에 나가 있는 백제군 5천 명은 몽진하는 의자왕 대열의 우측을 방어하러 나간 별동대였다. 황산벌 전투는 그 별동대와 신라군 사이에 벌어진 소규모 전투였다. 백제 군사 제도는 지방 단위로 분산돼 있으면서 필요하면 모이는 형태였다. 의자왕은 지방군이 결집할 시간을 벌기 위해 몽진 길에 올랐는데 그 선택지가 웅진이었다. 웅진성에서 지방 군대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는데 여기서 큰일이 벌어졌다. 웅진성의 성주 예식이 반란을 일으켜 의자왕을 사로잡고 당나라 장수 소정방 앞으로 끌고가면서 상황은 종료됐다. 예식의 집안은 본래 한족 출신으로서 백제에 귀화한 가문이었다. <구당서> 소정방전에는 “웅진성 수비사령관 예식이 의자왕을 묶어와서 항복했다”는 내용이 있다. 일찍이 단채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의자왕은 신하의 배신으로 포로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서는 “의자왕이 태자와 웅진방령군을 데리고 웅진성에서 나와 사비성에서 항복했다”고 기록했다. 웅진성에서 일어난 일에 입을 다문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백제 멸망 과정에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계백 장군의 신화는 어디까지 진실인가? 황산벌 전투에 나선 백제군의 지휘관은 좌평 충상, 달솔 계백 그리고 상영(좌평이라는 기록과 달솔이라는 기록이 병존) 등 세 명이었다. 백제 관직 서열상 좌평은 장관급이고 달솔은 차관급이니 당연히 최고사령관은 충상의 차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황산벌 싸움을 묘사한 것을 보면 계백이 지휘관인 것처럼 되어 있는 데 이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도 선비들 가운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계백 신화는 지휘관도 아닌 계백을 왜 지휘관으로 둔갑시켰으까? 충상은 신라군에게 항복해 신라에서 6두품 귀족에 편입되어 벼슬살이를 하며 잘 살았고 백제부흥군 토벌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계백은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기 때문일까? 그런데 계백의 스토리라인 자체는 많은 오류가 있다. 계백 장군의 부대는 백제 최후의 5천 결사대가 아니었으며, 계백은 지휘관이 아니었다. 또 처자식을 죽이고 전쟁터에 나갔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 어린 관창을 사로잡고도 죽이지 않고 놓아줬다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신라가 백제의 명장이 버티고 있는 어려운 싸움터에서 화랑도 정신을 발휘해 극적으로 승리했다고 해야 삼국을 아우르는 주인 역할을 할 수 있기에 가슴에 와 닿는 무용담이 필요했을 것이다. 백제 멸망의 역사는 승자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백제는 왕의 실정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을 정도의 피폐한 나라가 아니었고 최후의 결사대가 패전함에 따라 항복할 수 밖에 없었던 나라도 아니었다. 멀쩡한 나라였고 나당연합군과 싸울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고구려군의 응원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믿었던 부하의 배신으로 허망하게 무너졌다. 우리 역사 교실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장면인 백제 멸망의 역사 나아가 삼국 몰락의 역사를 있었던대로 설명해야 한다. 승자가 멋대로 왜곡해 앞뒤가 맞지도 않는 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건 커다란 죄악이다. ◆“위화도 회군은 명분없는 쿠데타” = 승자에 의한 왜곡 가능성 탐색의 두 번째 이야기는 위화도 회군(1388년)이다. 위화도 회군에 대해 미화를 하고 있는데 요동 정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1388년 고려의 우왕과 최영이 주도한 요동 정벌은 공민왕 시절인 1370년에 이미 점령한 바 있는 요동성에 다시 진출해 요동 지배권을 확립하고, 요동이 고구려와 고조선의 옛 강역으로서 동이의 땅임을 천하에 알리며 인정받기 위한 군사작전이었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요동정벌군의 지휘권을 갖자 요동 정벌을 중단하고 개경을 점령한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의 명분으로 이른바 ‘4불가론’을 내세워 고려왕조를 대신한 조선왕조에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4불가론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 △농번기 거병은 백성에게 불편하다 △요동 정벌 기간 중 왜국 침략에 대비하기 어렵다 △장마로 활의 아교가 풀어져 활을 쏠 수 없다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는 주장은 요동 정벌의 성격을 왜곡하는 문제가 있다. 요동 정벌은 원명교체기의 혼란을 맞아 우리의 옛땅을 되찾고 주변 민족과 중국에게 인정받겠다는 목적이 우선이었지 명나라와 전면전을 하자고 대든 게 아니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면 고려가 요동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명분은 충분했다. 1370년 공민왕 때 요동성을 거의 무혈입성해 점령한 역사가 있다. 또 원나라 지배 시기에도 요동을 다스리는 심양왕에 고려 왕족을 임명했고 1345년부터 1351년까지 6년간은 고려의 왕이 겸직했다. 공민왕의 요동 점령 시에는 수많은 요동 거주민이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며 내응하기도 했다. 농번기 거병은 백성에게 불편하다는 주장은 말도 안된다. 전쟁하는데 농번기가 어디 있느냐. 새로운 지도자로서 백성을 사랑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정치 구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구 침략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도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과 맞지 않다. 1380년 진포해전에서 왜구는 거의 전멸됐으며 그래서 상당 기간 왜구는 고려를 두려워했다. 게다가 우왕은 요동 정벌군을 편성할 때 경기도 병력을 남겨 둠으로써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장마로 아교가 풀어져 활을 쏠 수 없다는 주장은 왠지 어색하다. 우리가 활을 쏘지 못하면 적군도 쏘지 못한다. 이성계는 행군 속도를 느리게 하며 오히려 장마철을 기다린 정황이 있다. 평양을 출발한 정벌군은 신의주까지 200킬로미터를 20일 걸려 하루 평균 10킬로미터의 속도로 행군했다. 그런데 위화도 회군 후 진군 속도는 엄청 빨라졌다. 신의주에서 개경까지 400킬로미터를 단 10일만에 주파했다. 활 이야기는 이성계가 사안을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봤음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이성계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명궁이었다. ‘명궁인 내가 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진다’라는 논리적 비약이 숨어있다. 위화도 회군은 역사의식을 망각한 권력 추구 집단이 주도한 명분없는 쿠데타였다. 이성계가 전쟁터에 나갈 때 늘 따라다니며 큰 활약을 하던 약 2천명의 사병 집단이 요동 정벌에 참여하는 대신 개경으로 침투해 이성계 등 원정군 장수들의 가족을 관리한 것은 위화도 회군이 사전에 기획된 쿠데타라는 점을 방증한다. ◆조선 건국 세력의 잘못된 선택 ‘해금정책’ = 정도전은 권력욕의 화신으로 심지어 신권 정치를 추구했다. 특히 이상한 정책을 많이 펼쳤는데 그중에 첫 번째가 해금 정책이다. 고려는 통상 국가였다. 세계 역사를 봐도 반도 국가들은 무역에 사활을 걸었다.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와 로마가 왜 그렇게 피를 튀기고 싸웠나? 지중해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하고 이를 통해 충실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갈리아(프랑스), 게르마니아(독일)를 넘어 브리튼섬과 소아시아까지 영도를 확장했다. 반도 국가인 조선은 로마보다 해양이 더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는 비좁을 뿐만 아니라 산악 지형이어서 농토가 부족하다. 따라서 무역을 통해 공산품과 특산물을 팔아 부족한 식량을 메꾸는 게 필수적인 과업임에도 조선의 건국 세력은 명나라의 해금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구전으로 내려온 얘기에 의하면 제주도 인구의 3분의 2가 없어졌다고 한다. 해상 무역의 기착지로서 그 역할을 했으면 많은 것이 이뤄졌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 등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은 건국 이후 문을 닫을 때까지 민간인의 무역을 금지하는 해금정책을 실시했다. 조선은 출범할 당시 명나라에 나라 이름까지 정해달라며 저자세를 취했다. 따라서 많은 분야에서 명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베꼈다.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 주원장은 해금정책을 실시했다. 명나라의 해금정책은 신하국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선이 해금정책을 고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시대에는 활발한 무역활동이 있었고 조선 건국 세력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조선 건국 세력의 고민이었던 건국 명분의 부족은 정권의 안정성을 떨어뜨렸다. 상당수의 고려 신하들이 이성계 세력을 비토해 협력을 거부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명나라의 해금정책은 조선에서 해양 군사력의 등장을 미연에 막을 수 있는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해금정책으로 일단 정권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가 왕조가 안정된 이후에 되돌리지 않고 그대로 굳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의 해금정책은 해양을 중요한 활동 무대로 해야 하는 반도 국가 조선의 경제를 절름발이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조선을 바깥 세상으로부터 단절시켰다. 또 경제, 외교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종속을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두 번째 이상한 정책은 명나라의 번국을 자처했다는 점이다. 제후국이 된 것이다. 또 무리한 개혁으로 불교를 금지했다. 이것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쇼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유교적 신분 질서와 농업 위주의 산업관을 강조함으로써 산업 철학을 1500년 전으로 돌려버렸다. 조선의 건국 세력이 기원전 196년 즉위한 한무제가 주창한 ‘농자천하지대본’을 국시로 삼은 것은 시대착오적이었다. 국가 기본 설계의 결함으로 정체된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산업혁명의 흐름을 놓치고 변방으로 전락했다. ◆힘의 논리 외면하고 선악의 논리로 사실을 왜곡한 사례들 = 강약의 논리를 외면한 채 선악의 논리(도덕)를 앞세워 무거운 책임을 회피한 역사적 사실로 먼저 병자호란을 얘기해 보겠다. ‘병자호란은 미개하고 폭력적인 만주족이 선량한 문화국 조선을 유린한 것이며 만주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절개를 높이 기린다’는 식의 역사 서술은 국내 정치 투쟁의 명분을 지키고자 국가 안보를 포기함으로써 백성을 고난과 치욕으로 몰아넣은 집단 이기주의 정치 세력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1636년 병자호란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청나라와 명나라 간 중립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광해군의 외교 노선을 버리고 명나라 편에 서서 노골적으로 청나라를 적대시함으로싸 자초한 사건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세계 최강의 기병부대와 세계 최고 수준의 포병부대를 운용하고 있었기에 조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으므로, 전쟁을 피해야 했고 청나라의 요구를 적당한 수준에서 들어줘야 했다. 피할 수 있었던 병자호란을 자초한 당시 조정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온당한 역사 서술이다. 병자호란은 두 나라의 주력부대가 격돌한 큰 전투가 없이 종결됐다. 청군이 압록강을 건널 움직임을 보이자 도원수 김자점은 서북면의 조선군 장병에게 산성에 들어가 전투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정예 조선군 장병을 병자호란 내내 산성 안에 묶어두는 군사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압록강을 넘은 지 불과 5일 만에 청나라군이 한양에 나타났다. 조선은 최대 추정치 50만명의 백성을 노예로 바치고 정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게 충절이라고 왜곡한다. 북벌 계획의 진정성도 의심스럽다. 도원수 김자점은 인조반정의 핵심 세력이었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정치적으로 몰리니까 청나라로 북벌 계획을 밀고했다. 하지만 청나라는 이를 무시했고 오히려 김자점이 제거된 걸 봐도 북벌 계획의 초라한 실체를 알 수 있다. 세계 제1의 대제국이 된 청나라 입장에서 보면 북벌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기에 김자점의 밀고는 통할 수가 없었다. 북벌 계획이 현실성이 있었다면 청나라에 밀고했을 때 청나라가 그렇게 반응했겠는가? 또 간악한 일본이 선량한 조선을 유지했다는 프레임에 갇혀서도 안된다. 조선보다 훨씬 열등했던 일본이 어떻게 조선을 넘어서 세계적인 강국이 됐는가를 열심히 탐구해야 한다. ◆일본, 조선이 버린 무기로 조선을 치다 = 일본은 조선이 버린 무기로 조선을 쳤다, 조선이 버린 무기는 △바다 △은 △도자기였다. 먼저 조선이 바다를 버린 해금정책을 펼치다 보니 동아시아 무역의 주도권이 일본에게 넘어갔다. 일본은 동남아시아, 인도까지 진출해 아시아 무역의 중심에 섰다. 두 번째는 은. 조선 연산군 때 함경도 단천 광산에서 세계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은광석을 제련하는 기술의 발명이다. 은은 납과 붙어 있어 납을 떼어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서양에서는 이 문제 해결에 수은을 썼는데 은광 노동자들이 수은 중독으로 오래 못 살았다. 그런데 조선에서 연은 분리법 또는 은연 분리법이라는 획기적인 제련 기술을 발명한 것이다. 당시 유럽, 남아메리카, 중국을 잇는 삼각 무역에서 국제 결제 통화 역할을 하는 게 은이었기 때문에 은을 효율적으로 제련해 생산량을 늘리는 건 곧 국가의 부강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은이 많이 생산되면 사치 풍조가 만연할까 두렵다며 단천 광산을 폐쇄했다. 그러자 조선이 버린 이 획기적인 기술은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 시마네현에 있는 이와미 은광을 세계적인 은광으로 올려 놓았다. 이와미 은광은 전세계 은 생산량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컸다. 당연히 일본이 국제 무역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졌고 유럽의 열강들이 일본과의 무역권을 차지하고자 각축을 벌였다. 처음 포르투갈을 거쳐 최종적으로 낙점 받은 나라가 네덜란드였다. 세 번째 도자기. 조선백자가 뛰어난 것은 소재 혁명에 있다. 진흙이 아닌 고령토라는 하얀 흙으로 만든 게 조선백자이다. 조선백자는 어떤 금속 성분이 있느냐에 따라 파랗게 보이기도 하고 빨갛게 보이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군들은 그걸 보고 보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삼평, 심수관 등 보이는 대로 도공을 잡아갔다. 이삼평은 일본 번주로부터 엄청난 대우를 받은 인물로 일본에서 고령토 광맥을 발견해 백자를 생산했다. 그 백자에다 일본식 무늬와 채색을 해서 유럽에 팔아 엄청난 돈을 벌었다. ◆19세기 조선 조정의 삽질 = 19세기 조선 조정에서 삽질한 일이 매우 많은데 그 중 하나로 임오군란을 설명하겠다. 임오군란은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임오군란은 1882년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대의 장병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이 사건의 의미는 크게 두가지로 고종의 원병 요청으로 청이 군대를 파견해 대원군을 납치하고 반란을 진압했다는 것과 또 임오군란 진압 후 조선과 청나라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했다는 사실이다. 이 조약은 지극히 불평등한 내용으로 청나라 상인들이 조선 내륙에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치외법권을 인정받았다. 게다가 조선의 왕과 청나라의 북양대신을 동급으로 규정해 조선은 청나라의 직할 속령이 됐으며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주둔하게 됐다. 1885년 영국 해군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여수 앞바다의 거문고를 점령하고 해군기지를 만들었다. 조선이 세계 최강 영국과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이 거문도 사건은 1882년 임오군란 뒤에 벌어진 것으로 당시 조선은 청의 직할 속령으로 되어 있어 아무런 외교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그때 영국과 잘 했으면 영일동맹이 아니라 영조동맹이 이뤄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계사·동양사 관점에서 한국사의 재해석 = 우리 역사는 세계사, 동양사 관점에서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예로 아관파천을 그레이트 게임 선상에서 살펴보겠다. 여기서 말하는 그레이트 게임은 영국과 러시아 간의 투쟁을 말한다. 아관파천은 1885년 을미사변 후 친일 내각이 들어서 일본의 핍박이 거세지자 고종 황제가 1896년 12월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이다. 그러면 아관파천은 일제의 마수를 피하기 위한 용단이었는가? 아니면 조선을 국제 미아로 만든 구렁텅이였는가? 결론적으로 고종의 선택은 당시의 국제 정세를 보면 한참 잘못된 선택이었다. 러시아는 당시 대세를 장악하고 있던 영국이 적대시하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1885년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한 적이 있는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이 러시아로 접근하는 게 걱정거리였으며, 영국과 공조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선 스스로 연출한 것이다. 모든 잘못은 국제 정세와 국제 역학관계,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관계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지 못한 조선 지배층, 그중에서도 특히 고종의 무능함에 있었다. 영국의 국제적 위상, 영국과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레이트 게임에 관한 지식을 조금만 갖췄으면 러시아 공관으로 가는 길이 망국의 길임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신라가 당군을 상대로 무력투쟁을 했다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군이 철수하면서 포기하고 간 한반도의 일부(대동당-원산의 이남)를 신라가 차지했는데 간신히 한반도의 일부를 확보하는데 그친 신라로선 정통성과 지배권을 주장할 근거가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 당군이 철수했던 것은 토번의 침략을 받아 실크로드 통제권을 상실할 위기를 맞아 동방원정군을 토번과의 전쟁에 동원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만주가 진공 상태가 되고 이곳에서 거란, 여진, 고구려 간의 세력 싸움이 벌어졌다. 거란이 한반도로 남하해 신라군과 붙은 게 매소성전투인데 이를 대당투쟁으로 미화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당나라는 고구려 지역에 안동도호부, 백제 지역에 백제도호부, 신라 영토에는 도호부보다 격이 낮은 계림 대도독부를 뒀다. 이 얘기는 신라는 독립국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당의 번신이 된 신라가 진공 상태가 된 만주를 두고 새외민족끼리 겨루며 땅을 확보하는데 당나라가 왜 딴지를 걸겠는가? 번신이 땅을 넓히면 그게 당나라 영토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 이론으로 재해석한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 =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 패배는 지나치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신립 장군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높고 험한 곳인 새재가 아닌 충주 벌판의 탄금대에서 왜군과 맞서는 전술을 택했다가 참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군사학의 METTE-TC 이론의 관점에서 신립의 결정을 분석해보자. METTE-TC에서 M은 주어진 입무, E는 적의 규모와 전투력, T는 아군의 규모와 전투력, T는 지형과 기후, T는 주어진 시간, C는 민간에게 미치는 피해 등을 뜻한다. 신립 장군이 조정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 적군의 상태, 아군의 전투력, 지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새재가 아닌 탄금대에서 결전을 치른 건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곧 출현할 왜군과 결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신립의 입장에서는 사지라고 판단되는 새재에 진을 칠 수 없었고 주력 부대가 궁기병이기에 평야 지대면서 왜군이 지나칠 수 없는 요충지인 충주에서 결전을 치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전투 당시 날씨가 좋지 않았고 왜군의 전술에 대한 사전 정보가 부족해 신립의 기병대가 제힘을 쓰지 못한 게 주요한 패인이었다. ◆“‘일제 식민 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틀렸다” = ‘일제 식민 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논리적 허점이 많은 왜곡된 주장이다. 식민지 근대화 옹호론자들은 1945년 조선이 1910년보다 발전했으니 식민 통치가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런데 1945년 한국과 1910년 조선을 단순 비교하는 접근법은 틀렸다. 조선 스스로 근대화에 나서 1945년까지 이룰 수 있는 상황과 해방 직후의 상황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학문적인 접근이다. 수식과 도표, 여러 정황 증거는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밝히는데 부족함이 없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1945년 민족분단과 1950년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일제 식민 통치가 한국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조선을 일본의 일부로 본다는 대전제 아래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조선근대화였다. 식민지 근대화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식민 통치의 효과를 측정하려면 조선이 식민지가 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했을 때 1945년까지 이룰 수 있는 수준, 즉 Si(1945)와 S(1945)를 비교해야 한다. 여기서 S(1945)=S(1910)+식민통치 효과이다. 다만 Si(1945)는 측정하기가 쉽지 않기에 다음과 같은 논리가 뒷받침돼야 올바른 판단이 가능해진다. 식민 통치가 정당화 되려면 ‘S(1945) > Si(1945), S(1945) – Si(1945) >0’이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Si(1945)가 S(1945)보다 낮다고 해도 반드시 식민 통치가 긍정적 효과를 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만약 Si 함수의 도함수 dSi/dT가 S 함수의 도함수 dS/dT보다 가파른 모습을 보여 1945년 이후 특정 시점에서 Si 함수 곡선이 S 함수 곡선을 뚫고 위로 올라간다면 식민 통치의 효과는 부정적으로 된다. 일본이 조선 국토 안에서 추진한 인프라 건설, 산업 기반 구축, 교육 내용을 들여다봐도 일본의 목표는 ‘최선의 조선’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났을 때 조선의 산업구조는 경공업과 농업 그리고 광업으로 이뤄져 있어 산업 고도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의 산업구조는 보다 발전된 형태로 진화하지 않고 정체 상태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만일 식민 통치 옹호론자들이 옳다면 조선 땅에도 제철소가 건립돼야 했으며 대규모 조선소가 세워졌어야 했다. 일본은 조선의 산업을 일본 본토 산업 체계의 일부라고 생각했기에 일본에 존재하는 제철소와 조선소를 조선 땅에 세울 이유가 없었다. 일본이 ‘조선의 최선’을 추구했다면 당연히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폈어야 했다. 조선의 산업은 일본의 산업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육성하면 충분했다. 그렇기에 식민지근대화론에는 논리적인 허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1960년대 KBS의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누가 누가 잘하나?’가 있었다. 어린이들이 서로 먼저 대답하겠다고 “저요 저요‘하던 소음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누가 누가 잘하나?’와 같은 무질서한 개인 경쟁보다 ‘우리 모두 다 같이’라는 협동을 내세우면 사회가 보다 건강해지지 않을까? 놀랍게도 식민 조선에서는 ‘누가 누가 잘하나?’ 식의 교육이 이뤄질 때 일본 본토에서는 ‘우리 모두 다 같이’ 식의 교육이 이뤄졌다. 식민지 백성을 서로 협업하지 않고 개인끼리 경쟁하며 서로 시기하며 분열하게 만든 것이다. <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영림원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아이티비즈 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아이티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OR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 빚은 삶의 방식의 변화 출발점은 ‘이타적 개인주의’
KOR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 빚은 삶의 방식의 변화 출발점은 ‘이타적 개인주의’
사회학자 정수복 박사가 15일, 201회 영림원CEO포럼에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과 이타적 개인주의’를 주제로 강연했다.정 박사는 이번 강연에서 2007년에 펴낸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과 2024년에 출간한 <이타적 개인주의>라는 두 권의 저서에서 분석하고 주장한 것을 전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삶의 목표와 새로운 삶의 방식 등을 공유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12가지로 요약한 정 박사는 이 12가지 요소가 빚은 부정적인 의미의 한국인의 삶을 방식을 변화시키려면 ‘이타적 개인주의’가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압축 근대’와 전통의 지속먼저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시대 진단부터 해보자. 한 시대는 그 시대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와 함께 지난 시대가 된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서 지난 시대에 속했던 정신의 습관이나 물질의 흔적이 깨끗이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이후 한반도의 역사는 서구에서 시작되어 일본이 선취한 근대를 따라잡기 위한 필사적 노력의 시간이었다. 그후 한국의 근대는 서구사회가 몇 세기에 경험한 근대를 몇 십년만에 달성한 ‘압축근대’였다.이제 우리는 한 세기 이상의 노력을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실현해 근대사회의 외양을 갖추게 됐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사회는 정보기술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앞선 디지털 강국이 됐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는 아직 전근대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고 탈근대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엄청난 변화를 경험한 압축 근대화의 결과, 시대를 달리하는 전근대-근대-탈근대 요소들이 지금 여기 한국사회에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이른바 ‘비동기적인 것들의 동시성’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란 책의 부제는 ‘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이다. 우리는 각각 매일 현실 속에서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현실은 우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현실은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얻기 위해 적응하고 협력하고 투쟁해야 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우리가 우리의 욕망과 욕구에 근거해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 그것은 벽처럼 당연하게 서 있고 중력처럼 작용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현실의 논리에 따라서만 살지는 않는다. 소위 말하는 일이나 사업을 위해서는 현실의 논리를 따르지만 여가 시간이나 잠을 자는 시간은 현실을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꿈을 꿀 수 있다. 최소한 인생의 3분의 1은 잠을 자야 살아갈 수 있다. 24시간 내내 정보가 교환되고 거래가 이뤄지는 세상이 되면서 밤이 없어지고 수면 장애가 늘어나고 있지만 밤에 일한 사람은 낮에라도 잠을 자야 삶을 계속할 수 있다.장자는 잠을 자다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는데,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까 나비 꿈을 꾼 사람이 장자인지, 꿈속의 나비가 장자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무엇이 진짜 현실일까? 우리에게는 당연히 꿈을 꾼 사람이 장자라고 생각되지만 우리는 때때로 현실을 벗어나 나비가 될 때가 있다. 누구나 자다가 꿈을 꾸며, 연주를 듣거나 문학작품을 읽을 때나 골프나 테니스 등의 운동을 할 때 그 속으로 몰입해 자신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황홀한 사랑을 하거나 종교 예식에 참여하면서 엑스터시 상태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현실의 논리를 벗어난다.그러나 우리는 얼마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의 논리에 묶여있는 삶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에 때로 우리는 현실 너머의 세계로 잠시 다녀올 필요를 느낀다. 그런데 누구라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지만 현실의 논리를 벗어나서 다른 현실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과 예술과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학자나 예술가나 성직자들은 지금 여기의 현실이 작동하는 방식에 굴복하거나 적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금보다 더 확실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추구하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이는 일상의 풍경과 소리를 넘어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고, 현실의 논리를 벗어나는 초월의 세계를 우선시하며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타주의적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주어진 현실을 넘어 다른 현실을 추구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이뤘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살든 현실과 거리를 두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때 지금보다 나은 새로운 현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당연의 세계인 현실의 논리를 다른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은 당연의 세계와의 싸움그러면 당연의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기를 권하는 김승희 시인의 시 한 편을 읽어 보겠다.제목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아침에 눈뜨면 세계가 있다아침에 눈뜨면 당연의 세계가 있다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거기에 있다당연의 세계는 왜, 거기에,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왜 맨날, 당연히 거기에 있는 것일까.당연의 세계는 거기에 너무도 당연히 있어서그 두터운 껍질을 벗겨보지도 못하고당연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당연의 세계는 누가 만들었을까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당연한 사람이 만들었겠지당연히 그것을 만들 만한 사람,그것을 만들어도 당연한 사람,그러므로 당연의 세계는 물론 옳다당연은 언제나 물론 옳기 때문에당연의 세계의 껍질을 벗기려다가는물론의 손에 맞고 쫓겨난다당연의 손은 보이지 않는 손이면서왜 그렇게 당연한 물론의 손일까당연의 세계는 물론의 세계를 길들이고물론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를 길들이고 있다나날이 다가오는 모래의 점령군당연의 세계는 물론의 세계를 길들이고물론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를 길들이고 있다당연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물론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나날이 다가오는 모래의 점령군하루 종일 발이 푹푹 빠지는 당연의 세계를생사불명 힘들게 걸어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은그와의 싸움임을 알았다물론의 모래가 콘크리트로 굳기 전에당연의 감옥이 온 세상 끝까지 먹어치우기 전에당연과 물론을 양 손에 들고아삭아삭 내가 먼저 뜯어먹었으면하루 종일 발이 푹푹 빠지는 당연의 세계를생사불명 힘들게 걸어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은그와의 싸움임을 알았다물론의 모래가 콘크리트로 굳기 전에당연의 감옥이 온 세상 끝까지 먹어치우기 전에당연과 물론을 양 손에 들고아삭아삭 내가 먼저 뜯어먹었으면”시인은 물론의 세계와 당연의 감옥을 벗어나기를 꿈꾸고 있다. 우리도 힘들 때는 “세상이 왜 이래?” 또는 “산다는 게 뭐람?”이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가? 그런데 시인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은 당연의 세계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만큼 당연의 세계이자 물론의 세계는 넘어서기 어려운 강건한 벽이다.◆ 문화적 문법이란 무엇인가?2007년에 출간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은 그해 출판문화대상을 수상하고 중국어와 프랑스어로 번역 중이다. 이 책은 세 가지 차원에서의 벽 허물기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벽, 사화과학 내의 분과학문 사이의 벽, 학계와 일반 지식인 사회(문화예술계, 언론계, 종교계, 교육계, 시민사회운동권) 사이의 벽, 정치적 보수와 진보 사이의 벽을 허물고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의도이다.그렇다면 책의 제목에 들어있는 ‘문화적 문법’이라는 말 속의 ‘문화’는 무엇일까? 편의상 문화의 의미를 세 차원으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첫째, 가장 좁은 의미의 문화는 문학과 예술 분야의 창작과 공연 등을 가리킨다. 둘째, 특정 집단의 일상적 의식과 행위 방식을 가리킨다. 기업문화, 군대문화, 청년문화, 여성문화 등의 문화가 그런 뜻이다. 셋째, 내가 말하는 문화적 문법 차원의 문화이다. 그것은 한 사회가 오랜 세월에 거쳐 축적해 온 세계관과 인생관의 무의식적 차원을 뜻한다. 그것을 기저문화 또는 심층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바닷물에 비교하면 표면의 파도가 아니라 저류이고, 지층으로 비교하면 표층이 아닌 고층에 해당한다. 그것은 일상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식 저 건너편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간다.우리가 말을 할 때 언어적 문법에 따라 말하지만 그 문법을 의식하지 못하듯 문화적 문법도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따라하게 되는 규칙이다. 언어적 문법을 어기면 소통이 되지 않듯이 문화적 문법을 따르지 않아도 상호작용이 어려워진다. 문화적 문법은 개인이 집단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행위하는 것을 막는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문법을 어긴 사람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여러 번에 걸쳐 문법을 어기면 상대하지 못할 사람이 되고, 그러고 나서도 계속 문법을 어기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나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서 그런 문화적 문법의 구성 요소를 추출하고 그것의 종교적 출처와 구조화 과정을 밝히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근본적 문화적 문법 6개 요소와 파생적 문화적 문법 6개 요소 등 모두 12개 요소를 추려냈다. 이 12개의 구성 요소는 최재석, 박영신, 김경동, 송호근 등 사회학자들의 논의와 이규태, 강준만, 박노자, 진중권 등 대중적 지식인들의 논의, 이밖에 구한말 이후 한국에 대한 관찰한 외국인, 학계, 언론계, 시민운동권 등에서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제기된 100여 가지의 문제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하고 나의 관심과 기준에 따라 핵심적인 것들을 추출하고 분류하고 압축한 것이다.◆ 한국의 근본적 문화적 문법 6개와 파생적 문화적 문법 6개먼저 근본적 문화적 문법 요소 6개는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 등이다.문화적 문법의 종교적 기원을 밝히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은 무교(샤머니즘), 도교, 불교, 유교 등 전통 종교의 세계관을 살펴본 다음 그 가운데 ‘무교-유교 결합체’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의 근본적 요소를 주조하고 지속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해석했다.파생적 문화적 문법 요소 6개는 ▲감상적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 등이다. 이는 근본적 문화적 문법에서 파생된 문법으로 1876년 개국 이후 ‘압축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문법 요소들이다. 개화기 이후 서세동점의 상황에서 ‘생존’이라는 지상 목표, 일제의 식민 통치, 기독교와 맑스주의의 유입과 영향력 확대, 한국전쟁, 산업화, 정보화, 세계화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파생적 문화적 문법이 형성됐다.이러한 문화적 문법들은 그 나름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의 부정적인 역기능도 지적하면서 변화를 촉구했지만 쉽게 바뀌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12개의 문법 요소들이 서로 모순 없이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키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웬만한 충격으로는 해체되지 않는 단단한 구조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12개 요소 가운데 하나라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정치 변동에서 문화 변동으로이제 다시 한국의 현실로 돌아와 본다. 한국사회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룩했지만 문화적 문법의 수준에서는 큰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민주화 세력과 시민들은 정치적인 제도와 법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누가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과 국회의원이 되느냐라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우리 사회의 문화적 문법의 문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권 교체로 제도와 정책의 변화는 가져왔지만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 양식은 거의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386 또는 586세대가 주도한 1980년대 사회운동권의 기본 구도로 민족과 계급의 문제였지 민주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민주화운동 세대도 일상의 민주의식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제 제도의 민주화에서 의식의 민주화로 이행할 시기이다. 지금 탄핵 정국이 재현됐지만 2017년 문화사회학회에서 발표한 ‘촛불집회의 사회학’이라는 글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촛불집회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등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적 문법’의 변화가 없는 한 우리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정치의 변화는 표면적인 변화일 뿐이다.”그런 차원에서 2017년 촛불집회에서 널리 알려진 ‘19세 진주 여성’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의미심장하다.제목 ‘우리 안의 박근혜, 우리 옆의 최순실’“분노한 국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지금 저는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첫째, 저에게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명령적인 어머니가 있습니다.둘째, 제가 다닌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반 학생 전체의 의견을 묻지 않고 친한 친구의 의견만 듣는 반장들이 있었습니다. 반장의 뒤에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학급의 일을 결정하는 반장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에서 두발로, 교복으로, 시간표로, 학생을 통제하는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셋째, 제가 아르바이트했던 직장에서는 노동자와 노동법보다 돈과 상품을 우선시하는 사장이 있었습니다.여러분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제가 직면한 가장과 학교와 노동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저는 행복한 가정에서 살 수 있고 치열한 경쟁이 아닌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며 공부하고 기계가 아닌 사람답게 노동을 할 수 있습니까?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책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싫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싫습니다.제 삶의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 한 명의 책임입니까? 최순실 한 명의 잘못입니까? 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박근혜, 최순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부모님, 반장, 친구들, 선생님, 회사 사장,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박근혜, 최순실이 시키지 않았는데,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내 안의 박근혜를 발견하고 내 옆의 최순실에 분노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돈이나 자신의 소유물로 보지 않고, 사람을 돈과 이익으로 환산하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로 보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쟁 속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사람답게 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촛불집회 당시 한 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일상의 폭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 박근혜가 그리고 최순실이 일방적으로 잘못을 해서 이 사단이 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파시즘을 찾아서 고쳐 가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문화 변동은 결국 문화적 문법의 변화를 말한다. 앞에서 말한 12가지 문법 요소들은 어떤 방법으로 전환시켜야 할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먼저 근본적 문화적 문법은 ▲현세적 물질주의와 초월적 정신주의 사이의 긴장과 조화 ▲감정우선주의에서 이성적 합리주의 강화로 ▲가족주의에서 공공성과 정의 실현으로 ▲연고주의에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보편주의로 ▲권위주의에서 민주적 상호 존중으로 ▲갈등회피주의에서 갈등의 합리적 해결로 변화해야 한다.또 파생적 문화적 문법은 ▲감상적 민족주의에서 열린 민족주의와 합리적 세계주의로 ▲국가중심주의에서 국가-시장-시민사회의 조화로 ▲속도 지상주의에서 적정 속도로 지속 가능하게 ▲근거없는 낙관주의에서 신중하고 사려깊은 의사결정으로 ▲수단방법중심주의에서 목적에 대한 성찰과 과정의 의미 살리기로 ▲이중규범주의에서 겉과 속이 같은 윤리적으로 일관된 삶으로 변화해야 한다.◆ 왜 개인주의인가?그렇다면 그런 전환과 변화를 누가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나는 제도의 변화와 합리적인 정책의 수준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앞서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필요한 것이 개인의 각성이라고 생각한다. 대세를 따르지 않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개인이 여기저기 많이 나와서 12가지 문법의 어느 하나라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줄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곧 개인을 억압하는 위계적 공동체주의보다는 ‘건강한 개인주의’가 문화적 문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관문이라고 생각한다.왜 개인주의가 필요한 것일까? 먼저 가족의 약화와 더불어 개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구에서는 19세기 이후 1차 개인화가 일어나고 1960년대 후반부터 2차 개인화가 일어났으나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짧은 시기에 개인화가 압축적으로 이뤄졌다. 이런 ‘압축 개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1인 가구가 크게 증가했다. 이혼, 비혼, 미혼으로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났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자살률이 증가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 혼자 사는 젊은이가 늘어났고 직업상의 이유로 가족을 떠나 외지에 홀로 사는 사람도 늘어났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배우자와 자식없이 홀로 사는 독거노인도 늘어났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혈연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홀로 살게 된 개인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2015년 10월 기준 1인 가구가 511만 가구로 전체 가구에서 27.2%를 차지했고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개인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소속감이 약화되고 있다. 가족주의와 집단주의가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이 줄어들고 있다. 국가와 직장과 가족이 개인에게 요구하던 헌신은 더 이상 수용되지 않고 있다. 개인은 홀로 살게 되면서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누구의 명령이나 충고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게 된다. 물리적 차원의 개인화가 도덕적 차원에서 개인주의를 촉진한다. 개인화된 개인은 점차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자 주체라는 생각을 갖기 쉽다. 국가나 직장이나 가족을 위해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해, 국가, 직장, 가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산업화와 도시화, 민주화와 가부장제의 해체, 정보화와 교육 수준의 상승은 개인화가 개인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개인주의 없는 개인화’가 지속되는 한국사회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개인주의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뿌리 깊게 내려있다. 유교적 전통 안의 가족주의와 거기서 파생한 유사가족주의로서의 연고주의와 수직적 위계질서로 이뤄진 집단주의가 개인주의를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권위주의와 독재체제를 비판한 이른바 민주화 세력에 속하는 사람들도 가족주의, 집단주의, 연고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사회에는 국가중심주의, 반일민족주의, 가족주의, 권위주의, 지연과 학연으로 이뤄진 연고주의 등 개인주의를 억누르는 힘이 건재한다. 연고주의와 집단주의 논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집단의 논리를 벗어나려는 개인을 ‘배은망덕한 놈’, ‘독불장군’, ‘모난돌’, ‘이기주의자’ 등으로 비난하며 따돌린다. 그래서 속으로는 개인주의자라로 겉으로는 집단주의자로 살아가게 하는 압력을 가한다.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의 연대성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오래된 ‘문화적 문법’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문화의 전통 속에서 식민지 시대를 거쳐 분단시대로 이어지고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집단주의적 가치가 오랜 세월동안 개인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풍토를 만들었기 때문이다.그런 문화적 문법이 지배하는 풍토에서는 삶의 물리적 조건이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살아가게 바뀌어도 여전히 가족과 연고집단, 소속집단에 기대어 살아가려는 태도를 버리기 어렵다. 그래서 개인화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데도 개인주의가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못한다. 개인주의가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원자화된 개인들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살려는 삶의 태도가 부족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집단의 압력 앞에 자기 자신의 뜻을 굽히고 기존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마지못해 따라 살게 된다. 개인화는 이뤄지고 있는데 개인주의는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특히 가족을 단위로 생존과 번영을 추구한 한국인들은 가족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임에도 가족주의적 삶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가족이 약화되고 해체되어 탈가족화와 개인화가 증가하고 있지만 가족주의를 벗어나 개인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개인주의 없는 개인화’가 지속되고 있다.개인주의 없는 개인화는 수많은 문제를 낳는다. 그 하나의 본보기로 우리나라의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은 개인화는 계속되는데 건강한 개인주의가 부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리적으로는 개인으로 분리됐지만 정신적으로는 계속 가족주의에 기대에 살다가 가족이 지지 기능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삶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개인주의를 동반하는 개인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각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면서 상호존중과 협력을 바탕으로 개인들 사이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모든 인간관계를 집단주의에 근거한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개인주의에 기초한 평등한 인간관계로 바꿔나가야 한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개인주의란?현재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거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다. 크게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의미로 나눠 볼 수 있다. 부정적 개인주의는 곧바로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나르시시즘, 자기도취, 배꼽주의, 지나친 경쟁의식, 각자도생, 물리적 쾌락주의로 이어진다. 언론과 매체들에 따르면 1990년대 신세대에서 요즘의 MZ세대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행위 지향성에서 이런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식의 부정적 개인주의라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그렇다면 긍정적이고 건강한 개인주의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주체성과 자율성에 기초하되 책임감과 공공의식을 포함하는 개인주의다. 독자성, 독창성, 자기실현, 삶의 일관성을 추구하고,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발명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나가는 개인주의를 말한다. 그런 개인주의자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자기의 권리만큼 존중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건강한 개인주의자가 많아질수록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원칙에 의해 공적인 일이 공정하게 처리될 것이다.미국의 세계적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개인의 영혼이 갖는 고유성을 존중하는 도덕적 개인주의를 옹호하면서 그런 개인주의를 합리적 계산을 바탕으로 각자의 자기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타산적 개인주의와 구별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과학자와 지식인과 금융인을 배출한 유대인들의 교육의 핵심은 개성을 존중하는 데 있다. 부모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사람’이 되기보다는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억압과 권위주의 시대에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면서 개인을 억압하고 말로는 공익을 내세웠지만 뒤로는 사익만 추구했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활사개공(活私開公)’이라는 말이 널리 쓰여야 한다. 개인의 활력을 북돋우고 열린 개인들이 사익을 추구하면서도 공익을 생각하는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런 공동체는 ‘동이불화(同而不和)’, 곧 개성이 없이 다 비슷비슷하면서도 서로 다투고 싸우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다. ‘부동이화(不同而和)’ 곧 서로 다르고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다름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공동체가 돼야 할 것이다.과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 성장하고,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조직, 연령과 성별, 계층과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그런 문화적 문법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서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 스며들어 있는 오래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드러내고 깊게 오래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현실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의 현실을 성찰적으로 바라보며 미래를 지향하는 비전을 만들어 나갈 때 서서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변화할 것이다. 이번 강의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 영림원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아이티비즈 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아이티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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